예술이 힘을 발휘할 때
예술이 힘을 발휘할 때
  • 문리 미술,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지든갤러리
  • 승인 2023.07.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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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아시아는 큰 세계이다. 그로 인해 문화적 양태 또한 다양하다. 그래서 ‘아시아성’을 규명하려는 건 허구에 가깝다. 아시아 현대미술의 특성을 성급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적 특성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출발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리적 개념으로써 아시아는 근대의 대항해로 발견되고 짜 맞춰진 결과물일 뿐이다. 이것은 유럽에 의한 자기중심적 거리와 공간이며, 근동·중동·원동 등이 그러한 표현이다. 유럽적 시각에서 인종, 종교의 단일성, 지리적 독립성 등을 기준으로 대륙의 분획을 마친 후, 나머지 부분을 아시아로 명명했다. 요컨대, 아시아를 전체로 묶어 놓고 아시아적 특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공허한 레토릭(Rhetoric)일 개연성이 크다.

 고대 중국문화는 조선반도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근대에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문화를 먼저 도입함으로써 조선반도와 중국에 영향을 주었다. 최근 10여 년간은 한국이 대중문화를 선도하면서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처럼 문화적 맥락에서는 유동성과 융합성이 선명하다.

 한·중·일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역사적 부침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외교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들이 아주 민감하다. 이러한 시기야말로 예술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문제를 직시하는 직관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싫은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이 없다. 그래서인지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를 묶어서 문화예술 교류를 추진하려는 공동 인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힘과 이익으로만 움직이는 국제정치와 다르게 저마다 독창적 조형 언어로 각자가 중심이 되어 교류·소통·연대하는 능력이 있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도리는 문을 쉽게 여닫을 수 있게 해주는 경칩의 둥근 중심축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를 비롯해 각국의 현대미술 현장을 시간과 공간 차원으로 연결해서,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보자기 같은 열린 미술판을 깔려는 의도이다.

 이는 서구중심의 사유에 머물러 있었던 과거에 대한 성찰이며, 아시아 현대미술의 동시대적 상황을 예술로 규명하기 위한 야심 찬 걸음이다. 2018년 4월, 중국 베이징 예술국제미술관 초대로 <合, NETWORK> 전을 추진했다. 이어서 2019년 6월, 중국 현대미술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미술가들과 한국 미술가들이 『북경 發 전라특급』기획전을 통해 예술적 철도를 깔았다. 북경과 전라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현대미술 담론 형성과 공감의 개념을 담아낸 것. 이는 서로의 처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문화 영토를 확장하는 의도이다. 이런 와중 2년 전부터 중국 구이저우미술관(貴州美術館)에서 한·중·일의 주요 미술가들을 초대하는 기획전을 준비했다. 그 결과로 <격물개신(格物開新)>이라는 주제의 기획전이 오는 8월 27일까지 열린다.

 필자는 지난 7월 14일부터 22일까지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양시에 머물면서 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학자들을 만나서 토론하고, <동방의 전통과 현대미술>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 참석해 ‘저마다의 처지를 인정하면서 각자가 중심이 되는 연대의 필요성을. 공허한 토론을 넘어 자기만의 특성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구체적 실천’을 강조했다.

 어느 때보다도 한·중·일이 정치적, 외교적으로 극도로 긴장 상태여서 참으로 민감한 시기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술의 힘이 필요하고, 예술가들이라도 적극적으로 교류·연대를 실천해야 한다. 이런 새로운 시작으로, 예술가들은 입체적 협업을 통해 창작에 영감을 더해 갈 수 있을 거다.

 문리 <미술,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지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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