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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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3.07.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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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우연히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가 출연한 방송을 보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상대방 이름 대신에 직책을 부르는 것을 모욕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상대방 본연의 인간성을 배제하고 그 사람의 자리를 부르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 인상 깊었다. 우리는 어떤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직장인들은 ‘호칭’이 있다. 정확히 말해 업무의 역할과 책임에 맞는 ‘직책’이다. 전통적으로 사원-계장(팀장)-과장-차장-부장-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의 순으로 직책이 구분된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나아가 법조계 등 특수직도 마찬가지로 명칭은 달리하지만 계층적(Hierarchical) 구조에 따른 권한과 책임이 분배된다.

요즈음 사기업은 위와 같은 전통적인 직급대신 신선한 직책을 부여하기도 한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직원들이 서로 부르는 공식 호칭으로 ‘프로’, (이름 뒤에)‘님’으로 하고, 권한과 책임의 분배에 있어 팀장이나 그룹장, 임원 등에 있어 예외적으로 직책을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IT기업의 신생주자인 카카오는 서로 간 호칭에서 직책을 빼고 영어 닉네임을 쓴다. CEO이자 최대주주인 김범수 대표는 ‘브라이언’이라고 불린단다. 직책이 가지는 서열성과 경직성을 최대한 탈피하고 유연한 근무환경과 창의를 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카프카는 그의 소설 <소송>에서 법원의 구조와 직책의 복잡성을 조롱하였지만, 실제 법원의 경우 고등부장판사 직급이 사라져 사실상 평판사와 부장판사, 법원장, 대법관 등으로 나뉘어진다. 다른 기관에 비해 간결한 편이긴 하나 헌법 기관인 법관의 경우도 법원조직의 구성원이어서 직급제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를 하면서 의뢰인을 무엇으로 부를지 잠시 고민한 적이 있다. ‘~씨’, ‘~님’이라고 부르기는 뭐하고, 보통 ‘선생님’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남자 의뢰인은 ‘사장님’, 여자 의뢰인은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선생님’보다 ‘사장님’을 더 좋아하는 듯 보여서다. 사실 ‘선생님’이란 호칭은 의미에 있어 근사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나 공자, 석가모니도 제자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렸으니.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장님’보다 좋은 호칭은 없는 듯하다.

조직이 없어 말 그대로 프리랜서(Freelancer)인 개업변호사는 직급이 없다. 물론 로펌에는 파트너와 ‘어쏘’ 변호사 등 나름의 직급이 갖춰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세시대 용병이었던 기창병(lancer)과 같은 개업변호사는 ‘변호사’일 뿐이다.

변호사가 막 되었을 무렵, 누군가 변호사라고 불러주는 일이 좋았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다지 감흥이 없다. 오히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러시아 사람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인 김춘수 말마따나 누군가 직책이 아닌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부장님’, ‘사장님’, ‘변호사님’이 아닌 누군가의 꽃이 되고 싶으니까.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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