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코 없는 코끼리였다
우리는 모두 코 없는 코끼리였다
  • 최영규 전북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 승인 2023.07.1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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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규 전북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광주에 다녀왔다. 전주와 가까운 곳에서 흔치 않은 국제적 예술축제가 열린다기에 폐막을 코앞에 두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섰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올해로 몇 횟째 열리는지, 주제는 무엇이고, 예술감독은 누군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았다.

 ?광주 비엔날레? 올해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물’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지고 ‘부드럽게’와 ‘여리게’를 한 문장 안에 넣은 이유가 뭘까?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를 차용했다는데.

 그러고 보니 물처럼 한없이 무른 것도 없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어지고 모난 곳에 담으면 그 모양대로 변하는 걸 보면 모질지는 못하다.

 반면 콘크리트 제방을 무너뜨릴 수도, 모든 걸 순식간에 휩쓸 수도 있는 강력한 한방을 가졌다.

 유하면서도 강한 물의 이질적 속성에 빗대어 개인과 사회가 직면한 갈등, 혐오, 모순, 다름 등의 이슈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다양한 작품들로 보여주고 있다.

 압도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단연코 ‘코 없는 코끼리’로 언뜻 보기에 기괴한 대형 생명체 같았다.

 “코가 없는데 이게 코끼리라고?” 한 중년여성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들이 청각, 촉각, 후각으로 느낀 코끼리를 표현한 조형물이었다.

 결핍과 편견, 선입견과 차별의 이슈와 코가 없어도 코끼리인 것을 수용하고 수용을 넘어 포용해야 하는 사회적 태도와 책임감에 대한 성찰이 이 거대한 작품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다른 작품과 달리 이 거대한 코끼리 앞에는 ‘만지셔도 됩니다’라는 문구가 놓여 있었다. 먼발치에서 팔짱 낀 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촉감을 느끼면서 더욱 공감해보라는 작가의 의도였을 거다.

 경계를 넘어 가까이 다가가기를 그리고 코끼리의 결핍과 그것을 표현한 시각장애인들의 결핍에 대한 우리의 공감능력과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길 말이다.

 ‘코 없는 코끼리’는 비단 전시장에 놓인 작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천적으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불편한 시선과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쓰며 “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고 선뜻 대답할 수 있는가, 배려라고 말하지만 배제하지는 않았는가, 차이로 인해 차별하진 않았는가 되돌아본다.

 예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작가의 몫만이 아니다. 예술을 바라보는 타인의 해석과 공감, 삶의 경험이 닿아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각자가 갖고 있는 감정과 감동의 모양들을 예술이 모두 포용하고 그들의 삶으로 흘러들어 가듯이, 또 예술이 갖고 있는 독창성을 우리가 아름답다고 표현하듯이, 우리의 사회도 눈으로 보이는 결핍보다는 내면의 풍요로움을 볼 줄 아는 예술과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의 삶이, 또 예술이, 서로에게 코가 되어주고 손이 되어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모두 코 없는 코끼리였다.

 최영규 <전북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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