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처세대’와 가족주의의 덫
‘마처세대’와 가족주의의 덫
  •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 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23.07.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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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마처세대’를 아십니까? 이 용어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의 별칭으로 ‘베이비부머’ 혹은 은퇴 후에도 자녀를 부양하는 60대 부모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간 흔히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로 묘사되기도 했던 이들은 우리나라 고도성장기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팔구십대 노부모 부양과 함께 자식에게 주거, 교육 등은 물론 손자녀 돌봄까지 떠맡으며 온갖 지원과 책임을 다하는 낀 세대다. 가족부양을 위한 도구적 역할을 자임하는 마처세대는 그래서 가능한 은퇴를 미루고 은퇴 후에도 또 다른 경제활동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역선택을 하게 된다. ‘효’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가족주의 사슬에 묶여 마치 숙명처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자기 억압과 착취를 스스로 선택하는 이른바 ‘피로사회’ 증후군이 우리 사회를 무섭게 덮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양을 책임지는 우리 사회 가족주의 전통을 넘어 경제활동 최일선에서 은퇴한 부모가 장성한 자녀와 또 그의 자녀까지 책임지는 새로운 가족주의의 탄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가족 유대와 효를 가족사랑으로 치부하는 소수 특권적 계층이 있겠지만, 오늘날 대부분 부모가 그렇지 못해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의심하며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는 안타까운 현실이 우울할 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60대에 진입하면서 60세 이상 인구가 10년 사이 2배로 증가했다. 일 권하는 사회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마처세대’의 양적 확대가 빠르게 우리 사회를 점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4분기 60대 이상 근로자(337만5,000명)가 사상 처음으로 20대 이하 근로자(322만3,000명)를 앞질렀다. 아울러 60세 이상 취업자는 20년 전인 2003년 2월 185만6,000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 2월 273만4,000명으로 늘었고, 올해 2월에는 10년 전의 2배가 넘는 570만명대로 올라섰다. 이는 관련 통계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고령층 고용률 상승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층 취업자의 약 40%가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라는 지적이 아플 뿐이다. 이러한 고령층 경제활동은 자식에게 아파트를 사주는 ‘능력 있는’ 부모가 목표가 아닌, 장성한 자녀들에게 최소한 짐이 되지 않는 부모로 남고 싶은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의존과 희생을 강조하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마처세대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부모들의 과도한 부담과 희생을 넘어 가족 간 간극과 갈등을 조장해 가족유대를 파괴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어 문제이다. 노년을 노년답게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하는 국가정책 또한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책임으로 전가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마처세대’의 미래가 슬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시각일까? 이러한 논점에 동의한다면,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마처세대 부모들이 가족부양을 실천하면서도 개인적 가치와 사회경제적 가치를 모두 추구할 수 있는 전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다시 원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는 마처세대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현상에 대한 지적을 넘어 국가차원의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선택이 풍요로워지는 마처세대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최낙관<독일 쾰른대 사회학 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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