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력(鈍感力), 평화의 길
둔감력(鈍感力), 평화의 길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3.07.12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와타나베 준이치라는 소설가가 몇 해 전에 《둔감력》이라는 책을 써서 한국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삿뽀르 의대를 졸업하고 성형외과 교수를 하면서 많은 소설을 쓰기도 했던 작가다. ‘둔감’이란 말 그대로 ‘감각이나 감정이 무딘’ 것을 의미한다. 감정이 무딘 것이 좋은지 아니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좋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와타나베가 막 소설을 쓸 무렵 한 모임에 가입하여 소통하고 있었다. 이 모임은 일본의 유명한 문학상 나오키상이나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사람이 여럿이 나올 만큼 실력 있는 문학단체였다. 그런데 앞길이 창창한 한 작가 지망생이 한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는데 외면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크게 낙담하였다. 친구의 성격을 잘 아는 와타나베는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였지만,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새 작품을 구상하거나 쓰지 못하고 말았다.

상처에 대한 회복을 우리는 ‘회복 탄력성’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금방 벗어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회복 탄력성이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실패에 따른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회피로 일관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상처나 실패에 예민한 사람은 그것 때문에 스스로 묶이고 만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야기다. 와타나베는 이렇게 강조한다.

“둔감하라. 당신의 재능이 ‘팍팍’ 살아난다.”

소설 쓰기를 포기한 사람은 너무 순순하고 민감해서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것이 외부의 상처에 대해 약한 체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그의 재능을 칭찬해 주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작가로 크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둔감, 이는 재능인 동시에 그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필자도 이런 경험이 있다. 막 시를 외우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어느 날 저녁에 떠오른 시상을 바탕으로 시 한 편을 썼다. 그 뒤 유명한 현직 교수이자 시인을 만나서 인사를 나눌 기회가 되었다. 나는 그 시를 그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처음부터 칭찬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한마디 응원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끝내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혹시 내가 좋은 작품을 발표하여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다면 그의 실명을 이야기하면서 내 삶을 풀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지만,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음도 안다. 다행하게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이렇게 다짐했다.

“잘 쓰려고 아등바등하지 말자. 잘 쓰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니까, 분수대로 그냥 즐기자. 내 감정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그만이지.”

혹자는 글 쓰는 것을 장난으로 아느냐고 나무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망정이니,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날 이후 어떤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유명 작가의 마음에는 안 들지 몰라도 지인이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면 그냥 그것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 나이에 남의 평가에 상처받거나 우쭐거릴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세상에는 주변의 눈치에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나이 들어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후배들로부터 싫은 소리 들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냥 둔감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평화의 새 길임을 잊지 않고자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