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증후군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
펫로스 증후군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3.07.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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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장에 몇 년 전에는 없었던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며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던 신종 정신질환인데 바로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다. 펫로스 증후군이란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을 떠나보낼 때의 슬픈 감정과 괴로움 등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일컫는 표현이다.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 애완동물이나 동물을 잃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지만, 이따금 가족의 죽음과도 견줄 수 있을 만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2~3개월 정도를 정상적인 애도 기간으로 보고 있고 이 기간에 어느 정도의 우울감, 상실감은 갚은 유대감을 나눈 대상의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증상이 너무 심하여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동로 깊은 고통과 어려움을 느끼거나 1년 이상 증상이 지속될 때 병적 애도 반응으로 보고 정신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증상이 심할 경우 복합 비애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악화될 수 있다.

특히 병적인 펫로스 증후군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주로 주인 측의 부주의로 동물이 사망하였을 때, 주인이 안락사를 통해 애완동물의 삶을 끝내기로 결정했을 때, 혹은 신변상의 한계로 인해 동물을 처분해야 할 때 등 애완동물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질 만한 계기가 동반되었을 때 발생하기 쉽다. 또한 애완동물이 주인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을 넘어 해당 동물이 평생의 반려라고 여겨질 정도로 주인의 깊은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을 때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통계청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인구·가구 부문 표본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312만 9,000가구였다. 2020년 11월을 기준으로 반려동물 양육 여부를 물어본 결과다. 전체 가구 수가 2,092만 7,000가구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의 15.0%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였다. 7가구 중 1가구꼴로 반려동물 양육 가구였던 셈이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대다수는 개와 고양이를 키웠다. 242만 3,000가구는 개를 키운다고 응답했으며, 71만 7,000가구가 고양이를 키웠다. 가구주 연령별로 보면 50대 가구주 중 18.9%가 반려동물을 양육한다고 응답해 비중이 가장 높았다. 40대 16.5%, 60대 14.4%, 30대 14.0%, 29세 이하 12.4%, 70세 이상 9.8% 순이었다. 1인 가구는 9.8%인 65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도시보다는 농어촌에서 반려동물을 많이 키웠다.

농어촌은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꼴인 19.8%가 키우고 있었고, 도시는 그보다 낮은 13.8%였다. 이처럼 과거보다 훨씬 많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고 있다 보니 이에 따른 다양한 반려동물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TV 등 방송매체 등에서 반려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고 동물병원, 애완동물 전용 숍 등도 늘어나고 최근에는 반려동물 전용 장례식장과 화장터, 반려동물 전담 장례지도사 등이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반려동물 문화의 확산에 대한 이유로는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정서적 외로움, 경쟁적이고 치열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반려동물을 통한 애정과 신뢰 욕구의 충족에 대한 기대,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애완동물을 입양한 시점부터 펫로스 증후군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의 수명은 의학 기술과 식량 생산의 발달로 질병/사고가 없다는 가정하에 못 해도 70~80세까지는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에 반해 개나 고양이 같은 보편적인 애완동물들은 관련 수의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수명이 짧으면 10년, 길어야 15~20년이 대부분이다. 즉, 주인의 나이가 이미 많거나, 불의의 사고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애완동물을 떠나보내는 것을 목격하는 건 필연적인 결과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처음 반려동물을 키울 때부터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언젠가 다가올 수 있는 것으로 이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펫로스 증후군을 위한 대처 방법으로 먼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므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 동물과 함께하는 것이 귀하고 행복한 순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반려동물이 떠나게 되면 적절한 기념의식을 갖고 기념물을 만들어 충분한 애도의 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은 뒤 성급하게 새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특히, 집안에 어린 자녀가 있을 때 금방 새 반려동물을 들이면 자칫 아이가 죽음이나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길렀던 반려동물과 동일한 종, 같은 성별을 기르는 것도 올바른 방법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을 조언한다.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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