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태양은 초록의 숲으로 유혹한다
7월의 태양은 초록의 숲으로 유혹한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3.07.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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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7월의 태양은 숲으로 유혹한다. 뽕밭에서 오디를 따며 손끝과 입술이 새까맣게 물들어도 태양은 뜨거운 열정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불태운다.

열두 발 상모놀이가 상모를 돌리듯 빠르게 그러나, 가장 싫어하는 만큼 가장 좋은 사람을 떠올리며 7월의 문턱에 올라서니 숨이 막힌다. 그러나 과도한 긴장과 불안으로 고통받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아 아픔과 동행해보는 모험으로 숲의 소리를 마음에 담아 보기로 했다.

한때 사랑했던 기억처럼 핏자국 선연한 꽃잎 자리에 7월의 태양이 잘게 부서진다. 어디서 날아든 나비가 냅다 모자 위로 맴돌다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뒷모습이 마냥 예쁘다. 사랑의 감정을 부추기는 여름이 왔다.

가끔 몸을 뒤척이다가 계곡의 물소리에 발도 적셔보고 발목까지 차가움을 느끼면서 척추를 타고 오르는 통증을 다독이며 숲으로 갔다. 긴장과 불안, 우울, 분노, 미움, 피로감이 계곡 물소리에 흘러갈 것이다. 고요한 생각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최상의 행복감에 젖어 본 생태체험이었다.

몸은 자유롭지 않아도 숲속을 헤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삼림의 색채 환경과 온열 조건은 건강한 성인의 뇌파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 자연의 영상인 저녁노을과 푸른 하늘, 숲의 경관은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

산림치유는 몸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치유하는 대자연의 치유력이다. 입원환자나 간병상태인 고령자의 우울 증상을 개선한다. 강변 산책도 생각으로 물소리에 젖어 보는 고요를 소파에 앉아서 바람과 손잡고 허공을 거닐어 보는 자연 생태 여행도 좋으나 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온 용기는 건강에 대한 도전이었다.

환자와 함께 사는 사람은 불안감이 매일 숨 막힌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신체와 정신에 다양한 장애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면역계, 자율신경계, 내분비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발생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움트고 건강한 마음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기에 삼림요법에 매력을 느껴 보는 여유가 초록으로 물든다.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음이온, 기압, 적당한 습도를 느낄 수 있는 기온, 신선한 숲 향기, 산소 농도는 짙은 공기의 흐름이 사람의 오감을 자극한다기에 숲을 찾았다.

안 좋은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떠오르기조차 두려운 어떤 공간이 겹겹 스며있는 기억을 한 꺼풀 뜯어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감자 껍질 벗겨 먹을 때처럼 말이다. 그곳에 묻어 있는 소름이 끼치는 기억을 벗겨내어 불에 태워버리면 나쁜 기억은 없어질 것이다.

태초의 자연이 있다는 람사르습지인 ‘고창 운곡습지 생태길’에서 감추어진 자연을 찾아 초록의 꿈에 고통과 불안이 녹아들었다. 한 꺼풀씩 벗겨져 가는 느낌이 팔색조 새소리처럼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마치 교황이 악보를 백 년 넘게 봉인해버리고 1년에 단 한 번, 성금요일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서만 부르게 한 시편 성가처럼 들리는 새소리다. 숲속으로 내리치는 천둥소리와 어울려서 새소리는 참회의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 사제가 작곡한 참회 곡처럼 가슴에 파고들었다. 참회 곡 ‘미제레레’를 어느 새들이 노래하고 있는 걸까.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서자 마음은 바뀌었다. 천둥 번개가 숲의 질서를 어지럽히더니 고요해지며 아름다운 선율이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리는 새소리에 울적했던 마음이 멈춘다. 이 아름다운 숲의 선율은 마치 노래하듯이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우울했던 기억을 희망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베토벤 소나타 8번 중 ‘비창’ 2악장의 멜로디가 아닌가. 베토벤이 가장 행복했던 26세 나이에 작곡했다는 곡이어서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진 ‘비창’은 매우 마음이 상하고 슬픔을 뜻하지만 2악장은 감미롭다. 숲속에 천둥 번개가 지나간 후의 초록이 주는 새소리는 가장 아름다운 숲에서 얻은 행운이었다. 숲속의 낭만이었다. 어느 새가 피아노를 치고 있을까.

버드나무, 은사시나무, 갈참나무 나뭇가지엔 소나기가 왔다가 간 흔적으로 금방 부러진 가지의 상처가 보였다. 오색딱따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소리와 흥얼거려보는 참 아름다운 운곡습지였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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