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과 파문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과 파문
  •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전북미래교육연구소장
  • 승인 2023.06.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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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성 전주교대 교수<br>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사교육비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의 파문이 지속되고 있다. 혼란을 자초한 것은 대통령인데 파문이 확대되자 불길이 엉뚱하게 튀고 있다. 교육부장관에게 엄중 경고를 시작으로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경질되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사표를 냈다. 수능 출제기관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겠단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지금 교육계는 대혼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수능시험을 준비해온 교사, 학부모와 수험생들이다.

윤 대통령이 교육정책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뜬금없이 만 5살 조기 입학 학제 개편안을 꺼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히자 임명한 지 35일 만에 박순애 교육부 장관을 경질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대한민국의 교육문제가 대통령의 발언 하나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금까지의 여러 논란도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이번 수능 관련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 2가지 점에서 문제이다. 하나는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즉흥적으로 내리는 대통령 지시의 위험성이다. 대통령의 말은 그 파급력과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은 수능 때문만은 아니며 훨씬 더 복합적이다. 따라서 그 문제의 원인부터 제대로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입시가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수능의 변화를 지시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 입시에 크게 영향을 주는 수능시험에 대한 급격한 변화는 그것을 준비해온 많은 학교 현장, 학부모와 수험생들에게 큰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수능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논의한 후, 그 변화와 내용이 충분하고 자세하게 안내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가 심각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 3월 8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초·중·고 학생이 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으로 전년 대비 10.8%나 증가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이니, 사교육비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의 2배가 넘는다. 학생 수는 감소했으나(2021년 532만 명, 2022년 528만 명)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포함한 전체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41만 원으로 2021년에 견줘 사교육비는 11.8% 증가했다.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율도 78.3%를 기록해, 2007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발언은 이해가 되지만,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능 난이도를 조절하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은 실망스럽다. 사교육 문제가 수능 난이도만 낮추면 해결되는가. 수능을 쉽게 출제해 사교육을 잡고 공교육을 살릴 수 있다면 교육 문제 해결은 참으로 간단할 것이다.

수능을 쉽게 출제한다고 해도 사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이유는 수능 문제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시험에서 끝없는 경쟁을 시키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더 많다. 시험이 쉬워진다고 백분위가 사라지고 등급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에서 입시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시험 자체가 줄을 세우는 기능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다. 그래서 대입 선발 방식 또한 수능 시험 하나로 학생들을 판별하는 정시 위주의 대입전형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수시모집(학생부종합전형, 교과전형, 논술전형 등)이 확대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공정을 이유로 다시 정시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교육계에서는 수학능력시험이 대학에서 학습 가능 여부를 판별하는 데 목적을 둔 자격고사 형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해서 제기해 왔다. 진정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빈부격차나 부모의 소득수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 등에서 벌어지는 출발점에서부터 차별을 해소하고 결과적 평등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이뤄진다.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난이도 조절의 해결방식은 본질은 보지 못하고 현상만 바라보는 것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은 그 사회의 문화적 환경에 반응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 학생들은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 경쟁을 벗어나 협력을 경험하고, 자기 삶의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더 건강하고 온전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 학벌이나 학력이 만들어 내는 임금을 비롯한 사회적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대입 선발 제도의 보완과 학력과 학벌에 의한 사회적 차별 해소가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처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전북미래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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