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서정환 수필가
  • 승인 2023.06.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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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서정환 수필가

길을 걷다가 문득 블록 사이로 파란 새싹이 돋아나온 것을 볼 때가 있다. 저 단단하고 비좁은 공간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책에서 보고 마음에 와 닿아 적어 두었는데 그만 출처를 기억하지 못한 글이 있다면서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이 옮겨놓은 글을 한번 보자.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산꼭대기 바위틈이 주어지면 그곳에서, 거목의 그늘과 뿌리를 견뎌야 하는 곳이라면 역시 그곳에서, 물웅덩이 옆의 거친 경사지가 주어지면 또한 그곳에서, 강가 자갈밭 위의 한줌 흙이 주어지면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제 삶을 시작하고 완성해가는 것입니다. (중략) 모든 생명의 태어남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알고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숲은 그렇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삶을 수용하지 않고 열 수 있는 하늘은 없고, 시작하지 않고 넘을 수 있는 벽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은 조건을 탓하며 주저앉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탄생의 순간에는 무력한 존재이지만 생명의 조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있는 힘껏 살아갑니다. 어디에 씨앗이 뿌려지든 무슨 씨앗으로 태어났든 생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자원과 힘을 총동원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올립니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경이롭습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탄생은 수동이지만 성장은 능동인 것이 생명의 본질이자 힘입니다. 삶의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의식적인 존재인 인간은 그 의식의 한계로 인해 능동적인 태도로 바뀌지 못하거나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면 다시 수동적인 태도로 바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고난 조건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을 꿈꾸고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씁니다. 여기에서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고 삶의 불행이 싹트는데도 말입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습니다. 어떤 전공을 택하느냐,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 등 중요한 선택들이 계속해서 줄을 잇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들보다 더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바로 ‘삶의 조건들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둘 중에서 하나의 태도를 골라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임’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 말을 소극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체념이나 패배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수용은 체념과는 다릅니다.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라는 마음은 자기수용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수용은 완전한 자기부정도 아니고 완전한 자기긍정도 아닙니다. ‘진실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남들과 이야기할 때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해석’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빨개지는 나는 못난 사람이야’라는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 한두 번은 볼이 빨개질 때가 있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나는 바보야’라는 주관적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수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자기비난이나 신경증적인 해석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일정 기간 고통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우리를 계속 고통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계속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판단과 해석 때문입니다. 사실事實은 언제나 자유를 줍니다. 자기부정에서 벗어나는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을 필요 이상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진실만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내면에서 자기비난이나 자기부정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울려나올 때마다 의심을 가져보세요. ‘넌 형편없어’ ‘넌 패배자야’ ‘넌 쓸모없어’ ‘사람들은 다 너를 귀찮아해’ ‘너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다 너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야’라는 자기 파괴적인 대화가 흘러나올 때마다 우리는 자신에게 분명히 물어야 합니다. ‘정말 그런가? 그것이 정말 진실인가? 라고 말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반복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실패한 것인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인가?”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하는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늘 반복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서정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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