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3.06.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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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남자 175cm 이상, 여자 164cm 이상의 키, 뚱뚱하거나 마르지 않은 체격, 잘 생기고 예쁘진 않아도 호감형 외모, 모나지 않고 둥근 성격,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안정적인 직업, 4년제 서울소재 대학 졸업, 부모 지원 포함 3억 원대 자산, 화목하고 부모가 노후 대비된 집안, 종교는 무교, 음주나 흡연은 하지 않음.

‘육각형 남녀’, 들어 보셨나요? 위와 같이 외모, 직업, 집안배경, 성격, 학력, 자산 등의 조건을 고루 육각형에 가깝게 갖춘 미혼 남녀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얼핏 보면 조건들이 무난(?)해 보여 평균적인 남녀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이런 조건의 남녀는 이미 교제 중인 이성이 있을 확률이 높아 연애시장에 보기 어렵다고 한다. 예컨대 키가 크고 얼굴은 잘생겼지만,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거나, 본인 능력과 성격은 좋지만, 부모의 노후대비가 되지 않아 지원을 해야 하거나, 모든 조건이 좋지만, 음주나 흡연, 혹은 광적인 취미가 있는 등의 한 두 가지 흠결이 있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들의 혼인건수, 그 이전에 교제를 포기하는 이른바 ‘초식남녀’의 등장에 맞물려 조건을 보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사랑만으로 혼인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웬만큼 살 수 있었던 고도 성장기와 달리 요즈음 젊은 남녀들에겐 어려운 경제 상황과 높은 집값, 사교육비를 함께 부담할 ‘동업자’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육각남녀’를 보면 마치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는 듯하여 불편한 기분이 든다.

어찌 됐든 모든 조건을 평균적으로 갖춘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어떤 사람이든 장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장점, 특히 단점이 상대방에게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되면 얼추 평균인이 될 수 있다. 어릴 적 9시 뉴스에서 ‘대한민국 보통사람’을 인터뷰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6공화국 시기였다. 우리 모두는 평균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계급을 중산층이라고 답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것을 상징한다. 남자라면 ‘중간만 가라’는 군대의 오래된 가르침(?)이 기억 날 것이다. 특히 전쟁, 기아, 독재,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고난과 굴절의 역사를 몸소 겪은 보통의 한국사람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한다.

‘육각남녀’의 사례처럼 평균은 평균적이지 않다. 우리는 쉽게 ‘평균의 함정’에 빠진다. 평균값은 일견 신뢰할 만한 데이터와 수치를 근거로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1억 8천만 원이지만, 가장 가운데 있는 가격을 의미하는 중위가격은 9억 5천만 원이다. 전북의 아파트 가격 평균가는 1억 원 후반대이지만, 전국 아파트 가격의 평균가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억 원대다.

위험과 불확실성이 커진 현실 속에서 희망이 있는 일부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대부분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이름의 앨범을 낸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자신이 특별한 재능과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고 한다. 특별한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거세된 사회에서 우리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추구한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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