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초대시] 전병윤 시인의 ‘윷판’
[해설이 있는 초대시] 전병윤 시인의 ‘윷판’
  • 전병윤 시인 · 이오장 시인
  • 승인 2023.06.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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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윷판’

 이승이 끝난 빈소엔

 하얗게 밤을 지샌 국화가 졸고

 또 다른 이승의 윷판에선

 모야! 숫이야! 불이 붙었다

 

 도를 하고도 웃고

 모를 하고도 우는 세상이다

 

 하늘에 던져져 운명을 짓고

 땅에 떨어지는 윷가락

 

 세상살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흑마 백마는 고된 세월을 짚어간다

 

 시작이 늦다고 지는 것만도

 빠르다고 이기는 것만도 아닌

 윷판 같은 이승

 

 윷가락을 허공에 던져놓고

 안개 속 길을 간다

 

 지금 나는 윷판 어디쯤에 서 있는가

 나는, 지금 윷판 어디쯤에 서 있는가

 

전병윤 시인
전병윤 시인

전병윤 <시인>

 

 

 

 

 

 

 

 <해설>

 윷은 우주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설날에 주로 놀았으나 오락으로 널리 퍼지면서 명절과 농한기에 힘든 일을 잊기 위해 잠시 승패를 점치는 순간의 쾌락을 즐겼다. 해가 바뀌고 우주가 순환하는 이치를 가지고 노는 윷은 잡고 잡히는 이치와 앞서고 뒤서는 이치, 살고 죽고, 죽고 사는 이치가 들어있다.

 중국의 주역을 본따 만든 삶의 길이 있고, 우리 고유의 예언서인 천부경에는 우리의 길이 있다 하여 윷을 노는 것은 삶을 꾸리고 삶의 윤활유를 얻는 것이다. 고됨과 편안함, 쾌락과 유희의 순간을 만끽하다가 패가망신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람의 삶에는 우연을 꿈꾸는 비중이 많으므로 심리적인 이탈을 강제로 막지 못한다. 예로부터 상가에서는 날을 새는 문상이 원칙이므로 어느 정도의 유희는 허락되었는데 상주를 위로하고 문상객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목적이 있었다.

 우리의 삶의 설명은 중국의 주역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주역을 본따 만든 윷의 길은 천지만물의 변화와 소생과 소멸의 이치를 담고 있어 이것을 즐기다 보면 희노애락을 잊고 활력을 찾기도 한다.

 전병윤 시인은 윷의 이치를 그대로 이해하고 윷에 얽힌 삶을 풀어내었다. 작은 것을 얻고도 웃는 사람이 있고 큰 것을 얻고도 우는 사람이 있는 세상 이치에 윷가락을 하늘에 던져놓고 무엇을 바라는가. 시작이 늦었어도 잡아채어 앞서갈 수가 있고 끝판에 도달하고도 지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삶은 안갯속 걷기다. 언제 어디에서 멈추는지, 멈췄다가 어디로 다시 가는지 누가 아는가. 그 윷판 위에 삶을 던져놓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삶, 우리의 삶은 우주를 닮은 것 같아도 아무도 그것을 확인하지는 못한다, 다만 삶의 의문을 쫓아가다가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오장 시인 / 평론가

 이오장 <시인 / 평론가>

 *前 한국현대시인협 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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