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시인과 함께 읽는 책 놀이터 19-사과꽃(김정배/공출판사)
김헌수 시인과 함께 읽는 책 놀이터 19-사과꽃(김정배/공출판사)
  • 김헌수 시인
  • 승인 2023.06.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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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꽃/ 김정배/ 공출판사 

 1950년 6월 25일 새벽, 굉음과 함께 시작된 한국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70여년이 지나도록 전쟁의 상처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아직도 이산가족들은 가슴 사무치게 고향과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 <사과꽃>은 더 이상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일곱 살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그림책이다. 사과꽃을 매개로 아빠를 떠올리는 어린 아이의 가슴 아프고 따뜻한 이야기이다. 

 “탕!” 첫 장을 장식하는 한 글자, 고요한 마을에 커다란 소리가 번졌다. 평화롭던 마을은 총소리에 무너졌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입을 가렸다. 몇 발의 총성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 하나는 밤마다 자주 마음을 다쳤다. 마을의 총소리가 시작되던 저녁에 아버지는 우물 안으로 들어간다. 총성이 들리던 날 이후 우물 속에 숨은 아빠는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 를 피해 숨어있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를 끌고 나온 사람들은 “뒷집 삼촌” 이나 “아랫마을 아재”를 닮은 사람들이었다. 총소리와 함께 사라진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아빠를 닮은 작은 손을 가진 아이는 떨리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사과꽃이 필 때면 반드시 돌아온다던 아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황천장에 깨를 팔러 갔다.” 고 한다. 황천장은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여 누구라도 쉽게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마을 우물 옆 사과나무는 아이가 태어나던 해 아빠가 심은 것이다. 아빠가 끌려간 이후 엄마는 아이 몰래 사과나무 그늘에서 눈물을 훔친다. 

 “내가 우물을 들여다보며 노는 동안 누구도 가르쳐 주지도 않은 울음을 혼자 가지고 놀았다.”

 여러 해가 지나 소녀가 열일곱이 되던 해,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사과 하나를 쪼개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려 먹는다. 사과 하나씩을 골라 둘로 쪼개지 않고 먹는 모습은 아빠와 둘로 쪼개지고 싶지 않은 마음, 가족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시리아 난민 소년이 “그냥 전쟁만 멈춰줘요, 그게 전부에요.” 라고 인터뷰를 한 화면을 본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전쟁기념관이나 가상의 세계, 게임을 통해서 전쟁을 만난다. 신무기를 장착하고 게임의 레벨을 올리며 참혹함보다는 흥미로운 오락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하기에 바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아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벼이 생각하기도 한다. 아프고 슬픈 한국전쟁을 <사과꽃>을 읽으며 생각하는 아이들 모습이 진지하다. 평화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책을 읽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빛이 난다. 

 김헌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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