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상상하기(26) - 죽음을 대하는 자세
작은 학교 상상하기(26) - 죽음을 대하는 자세
  • 윤일호 장승초 교사
  • 승인 2023.06.14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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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좋은 곳에서 행복해. 치노야, 네 덕분에 한동안 행복했고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해야 돼. 엄마, 아빠 토끼들도 행복해야 해. 토끼들아, 사랑하고 고마웠어.”

 “토끼야, 지금까지 1년 정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좋은 추억 쌓아줘서 고마워, 지난주까지만 해도 뛰어놀고 있었는데. 들개들이 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 그래도 난 들개가 밉다는 생각이 더 커. 하늘나라에서 잘 살길 바랄게.”

 “처음 보는 순간 너희를 키우고 싶고, 잘해주고 싶었어. 절대 죽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우리가 미안해. 하늘에서는 행복하길 바랄게. 사랑해!”
 

 지난해부터 토끼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동사동(동물을 사랑하는 동아리)이었다. 동사동 아이들은 스스로 바자회도 열어서 돈을 모으고, 동물보호 단체에 기부도 했다. 그리고 토끼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토끼도 없는데 토끼장을 미리 사놓고 토끼가 오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흘러 작년 가을쯤 마침 졸업생 학부모님이 애완용 토끼 한 쌍을 주셨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교직원들은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눈 내리면 기쁨 가득한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들은 미끄러운 길 걱정을 하는 것처럼 잦은 번식을 걱정했다. 처음 키우는 마음이야 쉽지만 너무 개체수가 많아지면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학교 둘레 풀이란 풀은 다 뜯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토끼장에 아이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애완용이라 그런지 토끼도 아이들을 멀리하지 않았다. 걱정했던 번식 문제도 처음 몇 달 새끼를 낳지 않았다. 아이들은 토끼 이름도 지어주고, 토끼장 안에 청소도 자주 해주었다. 그리고 목공부에서 멋진 토끼집도 두 개나 만들어주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니 문제가 생겼다. 겨울방학이 되어 먹이 주고 살피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 시작은 엄청난 관심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법. 학교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사료를 주고, 토끼장 둘레 관리도 해주었다. 그러다가 2월. 개학하고 학교에 오니 시들했던 마음이 새로운 식구 소식에 학교가 또다시 들썩였다. 새끼 토끼 한 마리가 태어난 거다. 아이들은 새끼를 보기 위해 더 자주 발걸음을 했다. 작고 귀여운 새끼토끼였으니 얼마나 이쁠까. 3월 개학을 하고, 아이들은 토끼장에 더 많은 관심을 주었다. 주기적으로 청소도 하고, 새끼 토끼를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도 주었다. 하지만 주말이나 교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토끼들이 땅을 파고 토끼장을 탈출하는 문제가 자주 생겼다. 이러다가 야생동물이 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그나마 몇 달 키우면서도 다행히 학교 안까지 야생동물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5월이 되면서 새끼 한 마리가 더 태어났다. 총 네 마리 토끼 식구가 되었다. 날마다 토끼장 근처에 아이들로 북적였다. 없으면 못 살겠다는 듯이 아이들은 “아, 너무 이뻐. 토끼 키우고 싶어.”하고 토끼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토끼장을 너무 자주 들락거려서 아이들끼리 규칙을 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부귀면 둘레에 들개 여러 마리가 풀려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설마 설마 했는데 그 들개 몇 마리가 장승초에 왔고, 토끼장을 습격해 토끼 네 마리가 모두 죽고 말았다. 주말에 벌어진 일이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토끼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이들 충격이 클 것이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풀어야 할지 주말 내내 교사들 카톡방은 시끄럽게 울렸다.

 결국 토끼를 화장하고, 장례 절차에 따라 치르기로 했다. 월요일, 학교에 온 아이들은 난데없는 슬픈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토끼 주검은 학교 둘레 동물화장장에서 직접 학교로 방문해 차에 실어 화장장으로 갔다. 그리고 화장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화장한 토끼 주검이 학교 토끼장 앞에 재로 도착했다. 아이들은 토끼가 죽은 토끼장에 아쉬움과 미안함, 슬픔이 가득 담은 편지를 부쳤다. 그리고 학교 옆 용마봉 트리하우스 앞 나무에 재를 뿌렸다. 아이들은 편지도 붙이고, 묵념도 하며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그날 하루는 슬픔 가득한 날이었지만 아이들과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학년별로 죽음을 대하고 맞이하는 자세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었다.

 사람 나이로 벌써 열 살인 막내(학교에서 키우는 개)가 무슨 느낌이 있는지 3학년 아이들과 함께 토끼 식구들을 묻은 근처를 서성인다.

 

 윤일호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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