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종자의 새로운 가치
대마 종자의 새로운 가치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 승인 2023.06.12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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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신록의 계절을 맞아 양귀비꽃으로 조성된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6월은 들판이든 바닷길이든 걷기 좋은 곳 어디에서나 양귀비꽃을 쉽게 볼 수 있다. 진홍색 또는 분홍빛의 꽃잎과 가냘픈 줄기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자태가 고혹적이기까지 하였다.

그때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어머 어머!” 놀라더니 “이거 양귀비 아니야? 마약 성분 있는데 이렇게 길에 심어도 되는 거야?”라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 사람과 함께 걷던 사람도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러게 말이야” 맞장구를 쳤다. 둘은 총총총 양귀비 길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걱정을 안고 사라졌고, 나는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답답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리에 심어진 양귀비는 꽃양귀비 또는 개양귀비라고 불리는 관상용으로 마약 성분이 없어 안심해도 좋다. 물론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그 양귀비’와는 품종 자체도 다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이 동전의 앞과 뒤처럼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양귀비는 어떤 품종은 산들산들 아름답게 핀 관상용 꽃인데 또 어떤 품종은 마약의 원료로 이용되니 그 기능이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마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대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대마는 삼베옷의 원료로 많이 이용되나 더 많은 사람이 ‘환각작용’, ‘금지식물’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대마가 산업용이나 의료용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는 듯하다.

대마의 주성분은 인체에 환각을 유발하는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과 환각작용이 없으면서 인체에 유익한 효능을 가진 칸나비디올(CBD)이다. 식물조직인 잎, 줄기, 종자 등 부위에 따라 성분 함유량은 차이가 있는데 CBD의 건조중량이 0.3% 이하이면 헴프(대마의 영어표기)라 부르며 3% 이상이면 마리화나(대마초·마약), 30% 이상이면 해시시(Hashish·마약)로 칭한다. 그중 종자를 이용한 산업용 헴프는 인체에 유효한 CBD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수퍼푸드로 탄생하게 되었다.

햄프씨드는 19세기 80세까지 장수한 빅토리아 여왕이 애용했다고 알려져 빅토리아 여왕의 오일이라 불리기도 한다. 필수 아미노산과 필수 지방산의 함유량이 적절한 데다 인체에 필요한 오메가 3, 6, 9가 황금 비율인 1 : 3 : 1로 함유돼 있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 보고에 따르면 CBD 성분은 17가지 질환 치료에 도움을 주며, 체내 항상성, 면역력 유지와 염증 완화, 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치매 쥐에 CBD를 투여했더니 치매 유발 인자도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2020년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대마의 효용 가치에 주목하고 연구개발해 의료, 농업, 식품 건축자재, 대체 에너지 등 관련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에서는 대마의 대표성분인 THC와 CBD를 추출해 다발성경화증 치료제와 뇌전증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현재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CBD 세계시장 규모가 2021년 3조 9,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8년엔 15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국제전자제품박람회인 CES에서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줄 혁신적인 기술들과 다양한 제품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한 기업이 만든 식물성 음료 제조기도 있었다. 이 음료 제조기를 이용하면 집에서 대마, 아몬드 등 단단한 견과류로 직접 음료를 만들 수 있다. 제품 개발자는 “이 제품이 재료의 비타민과 미네랄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부드러운 식물성 음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마가 산업용, 의료용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여겨진다.

한편 국내에서는 대마를 연구, 재배하거나 판매하는 모든 취급자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취급허가를 위해 해당 기관을 통해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렇듯 안전을 위한 철저한 관리와 함께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연구개발, 산업화를 위한 국가의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 다양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는 국가농업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있다. 대마 자원도 다양하게 보존, 관리 중이다. 종자저장고에 잠들어 있는 국내산 헴프씨드가 하루속히 우수 소재로 발굴되어 산업화에 이바지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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