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을 지역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야
기초과학을 지역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야
  • 김현수 전북대 교수
  • 승인 2023.06.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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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전북대 교수
김현수 전북대 교수

연구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잠시나마 시원함을 느끼며 지난 1학기를 돌아본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찾은 캠퍼스의 생동감에 설레었던 것도 잠시, 안타깝게도 학교 내 상황은 내내 어수선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구절벽’의 문제가 우리 대학을 포함한 국내 많은 대학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학령인구는 거의 반토막이 났고,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과거 필자가 학력고사를 보던 시기와 비교하면 절반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특히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인구 감소를 넘어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 상황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지방 소재 대학의 학생 충원률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가 이슈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위해 학생 정원 감축을 포함하여 대학 자체 노력을 주요 평가 지표로 한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한 바 있으나,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현 정부는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키워드로 지역 대학의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것이 ‘글로컬 대학 30’ 사업인데, 정부가 대학 안팎의 벽을 허물고 지역 사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이끌어 갈 대학을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하여, 올해 10개 대학을 우선 지정하고, 2026년까지 지방대 30곳을 선정하여 5년 동안 교당 10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여 운영하게 된다. 또한, 여러 중앙부처의 대학 재정지원사업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으로 통합할 예정인데, 지자체의 대학지원 권한 확대와 규제 완화를 통해 지자체 주도로 대학 지원,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체계로 2023~2024년 시범지역 운영을 거쳐 2025년 전국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두 사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지역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및 지역 산업계와 협력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학에 과감한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데, 글로컬 대학 사업의 주요 평가 항목 중 하나가 구조개혁인 것을 보면 정부가 대학의 구조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미 다수의 대학이 대학 간 통합, 내부 학사구조 개편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대학 구조개혁안을 가지고 ‘글로컬 대학 30’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역 대학에 대해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지만, 구조개혁의 와중에 기초과학의 근간이 무너질까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다. 기초과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자연과학대학은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된 경우가 많다. 원광대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4개 학과를 폐지했는데 그 중 3곳이 자연대 소속이었고, 자연대 자체가 보건과학대학으로 변경되었다. 전남 순천대의 자연대가 폐지된 지 10년이 넘었고, 목포대도 올해 자연대가 폐지되었다.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흡수하고, 지역 산업 발전을 위해 응용학문이 강조되는 추세는 인정하나, 현대 산업 및 기술적 발전은 기초과학적 토대와 그 성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기초과학 그 자체가 아닌, 기초과학의 학문적 성과를 산업 및 기술 혁신과 연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일이나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의 경우처럼 말이다.

경제 및 산업 규모가 작은 우리 지역은 대학에서 양질의 인력이 배출되더라도 지역 내에서 이들을 모두 흡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조금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지자체가 지역 대학과 함께 산업계와 기초과학 연구 인력 사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과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혁신 기업을 양성하여 지역 산업의 규모를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말이다.

과학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대학과 지자체가 함께 뛰어야 한다. 올해 과학기술문화 시행계획을 살펴보면, 정부는 지역의 과학교육문화 저변의 확대가 지역 과학기술 혁신역량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지역은 저변 확대를 위한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 예를 들면, ‘과학문화거점센터’의 경우 전국 각 시도 중에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 전라북도이다.

과학교육문화 저변 확대, 기초과학적 성과와 지역 혁신의 연계는 우리 지역의 발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 좋은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정부가 대학과 지역이 협력하도록 독려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 지역 상황에 맞는 기초과학 육성을 통해 지역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역 발전의 청사진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김현수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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