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 인력 부족과 의대 정원 확대
필수 의료 인력 부족과 의대 정원 확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3.06.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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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민주당의 단독 간호법 제정 문제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사이 이번에는 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의료계와 정부의 충돌이 예상된다. 현 정부뿐만 아니라 전 정부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는 주요 현안으로 이미 몇 차례 시도가 있었다.

정부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2.4명으로 OECD 평균 3.5명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1명인데 반해 경북은 1.4명, 충남은 1.5명에 불과하는 등 지역의 의사 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 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수련병원에서 필수 의료과목(이하 필수과)으로 꼽히는 흉부외과(47.8%), 소아청소년과(28.1%), 외과(76.1%), 산부인과(80.4%) 등은 최근 5년간 전공의 정원을 모두 채우지 못하는 등 소위 필수 의료과 기피 현상이 두드려져 전공 간 인력의 불균형도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의 절대 수뿐만 아니라, 지역 간, 전공 간 의료 인력의 부족이 심각하여 의사 인력을 늘리기 위한 의대 정원의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의협의 주장을 보면 우선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OECD에 못 치는 것은 사실이나 2009년 인구 천 명당 1.7명이었던 것에 비하여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의사 수가 증가하고 있고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한국의 실정을 반영하면 10년 뒤에는 오히려 OECD 평균을 웃돌 것이며, 인구당 의사 수가 5~6명으로 매우 높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사실상 무상의료에 가까운 의료제도로 강력한 정부의 의료비 통제로 오히려 의료접근성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미치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만 OECD 꼴찌 수준일 뿐 우리나라의 의사 1인당 일일 진료 횟수는 OECD 1위인 16.6회(OECD 평균 6.8), 인구 100만 명당 병상 수는 일본(13.1병상)에 이어 2위(12.3병상), 환자 1인당 입원일수는 일본(28.2일)에 이어 2위(18.5일)로 모든 지표가 OECD 최상위권으로 결코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문제는 의사 수가 아니라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GDP 대비 의료비로 한국(8.1%)의 비율은 OECD 평균(8.8%)에 비해 아직도 저조한 수치이며, 미국(16.8%), 스위스(12.2%), 독일(11.2%), 프랑스 (11.22%), 일본(10.9%), 영국(9.8%) 등 의료수준이 비슷한 주요 국가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적은 의사 수와 적은 돈으로 의료서비스는 OECD 최고 수준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 숫자의 절대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료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의료비의 충원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필수 의료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그 무엇보다 필수 의료분야의 낮은 수가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 수가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볼 때 48%, OECD 국가의 평균에 72% 정도로 매우 적다. 단적인 예로 2017년 기준 자연분만 수가는 미국이 1만 1,200달러이고 한국은 1,040달러에 불과하다.

둘째, 필수 의료분야의 의료사고나 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악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책임보험, 조정·중재, 합의, 형사처벌 특례조항 등 비 형사적 구제 방법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환자나 응급의료 분야 대신 미용·피부·도수치료와 같은 소송 위험이 적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셋째,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역학적 변화에 따른 의사 인력 수급의 불균형도 문제다. 저출산 문제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었음에도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분야의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미흡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건복지부(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의대 정원 확대를 포함한 의사 인력 확충 방안에 대한 논의를 추진하기로 8일 합의했다. 테이블은 마련되었으나 양측의 동상이몽 격으로 견해차가 커서 과연 원만한 합의가 가능할지 우려가 앞서고 있다.

필수 의료 인력의 부족이라는 의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순히 머릿수 늘려서 의사 간에 무책임하게 경쟁을 부추겨 경쟁에 뒤진 의사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필수 의료분야나 시골로 가서 의료에 종사할 것이라는 일차원적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소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좀 더 필수적인 의료에 뛰어들 의사들이 ‘필수 진료의 수가 현실화’ 같은 안정적으로 활동할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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