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무도’
- 이정화 시인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소나기 받쳐주던 우산도
풀밭을 사뿐거리던 나비도
당신 것이었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때때로 당신은 들개처럼
시퍼렇게 멍이 든
밤을 짖어대기도 하고
뜨거운 저수지를
낚아 올리기도 하였으나
고양이만 가르릉거리는
텅빈 무대만 남았다
밤은 가고 아침이 와도
내일은 또다시 삼켜지고
추락에는 밑바닥이 없으리니
그대여
사랑했다고 말하지 마라
<해설>
가면무란 차마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때 탈을 쓰고 춤을 추거나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어떤 행위를 해도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아 탈속의 얼굴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모르게 내면과 차단되어 있는 상태라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이 시는 처음과 끝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고 하면서 수미상관법으로 탄탄하게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끝까지 당부하듯 말 할까요.
“소나기 받쳐주던 우산도/ 풀밭을 사뿐거리던 나비도/ 당신 것이었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때때로 당신은 들개처럼/ 시퍼렇게 멍이 든/ 밤을 짖어대기도 하고/ 뜨거운 저수지를/ 낚아 올리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모두 가면 뒤에 숨어서 벌인 거짓된 퍼포먼스였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일종의 배신감 같은 감정이 들었을까요.
그래서인지 가면무의 결과는 “고양이만 가르릉거리는/ 텅빈 무대만 남았다”고 말합니다. “밤은 가고 아침이 와도/ 내일은 또다시 삼켜지고/ 추락에는 밑바닥이 없다”는 표현을 보면 그 가면무 끝에 남는 것은 허탈과 슬픔만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탈속의 진짜 얼굴을 만나 보는 것이 이시의 핵심일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서로가 가면무를 쓰고 무대에서 춤추다 내려오면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시 속에 빠져있다보니 시니컬한 생각까지 드는 것은 아마도 시의 울림이 묵직한 탓 인가봅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