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이 된 신의 선물
악(惡)이 된 신의 선물
  •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 승인 2023.06.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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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세계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미지의 섬이 있다.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고 불리는 이 섬은 북태평양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위치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다.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대양을 순환하는 해류를 따라 이동하며 모이고 모여 우리나라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거대한 모습으로 인간을 역습한 것이다.

 플라스틱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 시작은 당구공에서 출발한다. 1863년 뉴욕타임즈에 한 광고가 실린다. “상아를 대체할 당구공 물질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겠다.” 이때 처음 천연수지 플라스틱이 세상에 등장한다. 그리고 1907년 미국의 화학자 베이클랜드가 이를 보완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합성수지 플라스틱이 탄생하였다.

 플라스틱이 발명된 이후 인간의 생활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인류의 역사를 도구 기준으로 볼 때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지나 ‘플라스틱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모양을 낼 수 있는’ 플라스틱의 어원처럼 가공이 쉽고 가벼우며 경제적인 플라스틱이 산업에 적극 활용되었다. 이 시점부터 플라스틱은 ‘신의 선물’로 칭송되며 우리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동시에 플라스틱 폐기물의 발생과 처리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OECD(Global Plastics Outlook, ’22.6)가 발표한 플라스틱 폐기물의 발생량 조사 결과를 보면 2000년 1억 5천만 톤이었던 폐기물은 2019년 3억 5천만 톤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할 경우 2060년에는 현재의 세 배 수준인 10억 1천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에 플라스틱 폐기물의 처리 통계를 보면 재활용되는 양은 9% 수준에 불과하다. 절반은 매립되고, 19%는 소각, 22%가 무단투기 된다. 그 중 심각한 것은 무단투기 되어 토양과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잘 부식되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지구를 떠돌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한편, 미세플라스틱의 형태로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성인 1인이 매주 신용카드 1장(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고 하니,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음식과 함께 플라스틱도 같이 먹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세계 각국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열린 유엔환경총회에서는 175개국이 모여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맞춰 지난해 10월 ‘전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을 마련하고, 2024년 이후의 ‘포스트(Post)-플라스틱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유예한 1회용품 사용 저감대책을 확대 시행했다. 1회용 플라스틱 수요와 폐기량이 많은 공공시설, 카페·식당, 대규모 체육시설 등을 대상으로 제도를 안내하고 대회용품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오늘 6월 5일은 UN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다. 국제사회가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다짐하며 제정한 날로 올해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 퇴치’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 사용하기, 1회용컵 대신 텀블러 이용하기 등은 환경을 위해 누구나 실천 가능한 일들이다.

 인류에게 편리함과 이익을 주었던 플라스틱은 이제 위협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삶과 환경을 역습하고 있다. 미지의 섬이 더 커지지 않도록 환경의 날을 맞아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에 함께 동참하자.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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