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과 정적 속에서 평화로움을 얻다
고요함과 정적 속에서 평화로움을 얻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3.06.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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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지난 5월 25일 오후 6시 24분, 힘차게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이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성공을 알렸다. 1993년 6월 4일 한국이 쏘아 올린 첫 우주발사체인 ‘과학로켓 1호’가 하늘로 솟아오른 지 30년 만인가 보다.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의 발사대를 이룩한 누리호가 봉래산 위 하늘로 치솟았다. 붉게 타오르는 섬광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기여는 임무이기를 바란다.

누리호가 성공하기까지 연구진들이 개발에서 발사까지 전 과정을 우리 스스로 만들었기에 기쁜 환호가 터져 나오지 않았을까. 바람과 번개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데 마치 순조로운 누리호의 우주 비행을 기원하듯 그 시각 바람도 2.4m/s 남동풍으로 숨을 죽이며 불었다고 한다.

인간을 위하여 큰 사명을 가지고 우주를 돌고 도는 누리호는 평화에 대한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 외침이 들릴까. 유사 이래 지구상에는 1만 4,500회의 전쟁이 있었고 36억 명이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전쟁의 총성이 멎었던 순간은 단 하루도 없었다. 전쟁 중 사람의 목숨을 향한 저격병은 초인적인 예민한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총알의 방향이 지구의 자전 방향을 살펴야 하고 숨소리와 바람의 속도까지 계산한다니 전쟁은 얼마나 무섭고 치열한 싸움인가.

그러기에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매일 밤 9시에 기도를 바치는 국민들이 많다. 육이오 전쟁 시에 겪었던 공포의 총소리가 6월이면 창밖에서 들리는 것 같다. 괜히 가슴이 뛰는 6월이 왔다.

달콤하고 자극적인 카푸치노 커피보다 따뜻한 보리차 한 컵이 산란해지는 마음을 달래준다. 창밖 새 소리만 바람에 섞여 들려올 뿐 조용한 오후엔 내 안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외향적이고 진취적이며 사회적인 성취를 위하여 뛰어다녔을 때보다는 정적 속에서 구름이 지나가는 발자국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게 소중한 사람과의 마음을 진실하게 나누며 친밀한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더 마음이 편안하다. 서로 스며 듦에서 행복의 색이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가치관을 정립시킨다. 삶의 방향이 신호등처럼 보일 때는 고요 안에서 천천히 밀려오는 행복의 빛을 찾아야 한다.

고요함 속에서 스며드는 평화로움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만난다.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에 나의 모습이 거꾸로 보이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도 편안하다. 정겨움이 스민다. 나를 들뜨게 하는 요란함과 북적거리는 욕망은 이젠 소용없다고 느끼게 되며 지치게 한다는 깨달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는 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소슬바람처럼 지나가는 게 가장 좋다. 책상에 쌓인 책들을 볼 때마다 풍요로운 행복감을 느낀다. 외로울 땐 밤낮없이 책을 펼치면 수많은 단어가 외로움을 몰아낸다.

이성표의 그림책 『시를 읽는다』는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산문집에서 발췌한 글이 장미꽃 향기처럼 영혼을 즐겁게 한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시의 가시에 찔려’에서 휘파람이 저절로 정적을 깨뜨렸다. 한 권의 책으로 행복을 산 것이다. 도서관과 서점을 드나들며 종이 숲 속을 걷는 향기로움은 분명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에서 얻는다.

이팝나무꽃이 지고 아카시아꽃도 시들고, 하얀 때죽나무꽃과 금낭화처럼 한 줄기에 꽃이 주렁주렁 달려 피는 쪽동백꽃 그늘에서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생각을 정지시켜 본다.

종이의 숲을 생각으로 걷다가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천천히 넘기는 맛이 감동적이다. ‘새삼 경탄스럽다. 압도적인 몰입감, 가슴 먹먹한 감동, 작가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라고 소개한 소설을 읽고 있다. 부채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며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 초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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