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지만, 해야 한다
억울하지만, 해야 한다
  •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 승인 2023.05.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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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일상을 회복하면 모든 게 잘 될 줄 알았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려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할 때는 본의 아니게 집에서 넷플릭스를 봤다. 이제 겨우 손에서 리모컨을 내려놓았는데 새로운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국제적 시류를 거스르는 외교, 추락하는 경제지표, 위축되는 자유도. 이런 부조리 속에서 오는 무력감과 모멸감이 가득하다.

 역병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대가나 아픔이라고 생각하기는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든다. 필자는 미술인으로서 예술의 가치와 힘을 믿고 있지만, 시절이 하도 어수선하다 보니 미술판 담론들이 궁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절이므로, 용기를 내서 예술을 말하고자 한다.

 예술은 현장의 아우라(Aura)를 통한 감동이 생명이다. 인생에서도 감동이 없다면 사는 게 아니라 생존만 하는 것이리라. 생동감이 없는 생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권태로운 일상은 예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우리 삶이 생명감을 얻는다.

 한국 현대미술 현장에서 레지던스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여 년을 넘기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쌈지스페이스와 국립창동스튜디오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레지던스는 미술대학이나 대학원을 막 졸업하거나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아직 정착하지 못한 미술가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2010년, 전북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전라북도 협력사업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 당시만 해도 지역 미술계 관계자들조차 “레지던스가 뭐여?”하는 분위기였지만, 지역 미술계에 건강한 담론을 생산하는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고답적인 전북미술에 타지역 미술가들이 체류·교류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2018년, 연석산우송미술관(WooMA)은 레지던스를 시작했다. 젊은 미술가들이 안정된 공간에서 깊이 사색하면서 창작에 전념하기에 최적지다. 지난 5년 동안, 동상골 절경과 단애(斷崖)가 절묘하게 맞물려 있는 이곳에서 중국·미국·일본·인도·스페인·태국·방글라데시 등에서 30명 미술가가 머물면서 예지를 불살랐다.

 2023 우마 레지던스(WooMA Residence)는 공모를 통해 서류심사와 심층 면접을 거쳐 6명(김화정, 비비킴, 박선, 박영선, 서지, 비노이)의 유망한 미술가를 선정했다. 이들에게는 안정된 창작공간과 개인전·평론가 매칭·현대미술 특강 등을 지원한다. 입주미술가들은 상호이해와 격려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길을 모색해 갈 것이다.

 연석산우송미술관은 지난 시간 축적한 국제적인 관계망을 통해 해외 활동을 지향한다. 미술관 특성화 사업으로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펼쳐갈 것이다. 지도리는 문을 쉽게 여닫을 수 있게 해주는 경칩의 둥근 중심축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를 비롯해 각국의 현대미술 현장을 시간과 공간 차원으로 연결해서,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보자기 같은 열린 미술판을 깔려는 의도이다. 이는 기획전시와 예술적 담론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현장성 있는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다.

 오는 7월 14일까지 열리는 『WooMA ON-AIR』 전은 입주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면서 우마 레지던스 시작을 알리는 기획전이다. 지역민과 방문객, 예술계 전문가들에게 인사하는 자리. 이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협업을 통해 입주미술가들의 창작에 영감을 불어넣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저마다 독창적 조형 언어로 각자가 중심이 되어 교류·소통·연대하는 장을 기대하면서.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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