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상상하기(25) - 막내 돌봐주는 사람이에요!
작은 학교 상상하기(25) - 막내 돌봐주는 사람이에요!
  • 윤일호 장승초 교사
  • 승인 2023.05.24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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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장승초에서 키우는 개) 돌봐주는 사람이에요.”

 “3학년 과학을 가르쳐요,”

 “체험학습 갈 때 함께 따라가요.”

 누구 이야기일까? 장승 아이들에게 물으면 이런 대답이 나온다. 알듯 말듯 한 이 사람은 바로 지금 장승초 교장샘이다. 1학년 아이들에게는 막내와 함께 뒷산 용마봉으로 산책을 가고, 막내를 제일 많이 돌보는 사람이다. 또 3학년 아이들에게는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더불어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갈 때 혹시 뒤에 쳐지는 아이가 없는지 살피는 분이기도 하다.

 “교장실이 없어요.”

 “방과후·돌봄, 교과서 업무를 하시는 분이에요.”

 “체험학습 계획을 다 세우셔요.”

 교사와 학부모에게 교장샘이 어떤 분이냐고 질문을 하면 나오는 대답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그냥 선생 하는 게 낫겠네.”하실 분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지난 네 해 동안 교장샘의 역할은 그야말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힘든 자리였다.

 2010년대 우리 교육에 북유럽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하도 북유럽 교육을 이야기하기에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북유럽 학교를 탐방하면서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교장의 역할도 인상 깊었다. 가는 학교마다 교장은 군림하는 권위적인 교장이 아니라 학교를 찾는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분이었다. 또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을 처리하는 분이었다. 우리나라와 견주면 교장실은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책상 하나 달랑 있는 두세 평도 안 되는 비좁은 방이었다. 물론 교사를 선발할 수 있는 권한도 있고, 교사들의 평가권도 가지고 있었지만 권한에 따르는 책임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우리와 북유럽의 교육 여건이나 처지가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북유럽 열풍이 불던 시절, 우리는 도대체 교육 선진국의 그 무엇을 닮고, 배우고 싶어 했을까? 교사와 교장 선생님의 교육을 향한 시선이 동상이몽은 아니었을까?

 초·중등교육법에는 교장의 자격요건을 ‘학식·덕망이 높은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한다는 인정을 교육부장관으로부터 받은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국가 기준에 따르는 표현이다. 좀 더 학교 현장에서 교육 공동체가 피부로 와닿는 표현은 어떨까. 예를 들면 ‘학식과 덕망이 높고,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업하며 수평적인 문화를 존중하고, 학교의 업무와 민원을 협력하는 사람’ 정도는 어떨까?

 장승 교장선생님은 교장실이 따로 없다. 교무실에서 함께 근무한다. 교장실은 장승 공동체라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교무실에는 교무실무사, 교감, 교장, 교무가 함께 근무하며 업무 전담팀으로 역할을 한다. 넷이 모인 업무협의실은 일의 효율성이 아주 높다. 결재도 바로 할 수 있고, 긴급하게 의사결정을 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바로 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교장샘을 포함한 업무 전담팀은 담임교사 잡무를 최소화하고, 아이들과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교장샘 한 분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값어치 있고, 소중한 아이와 교사 중심 시스템이다. 따지고 보면 교육혁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공간에서 내 역할과 책임을 좀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갈수록 교장 역할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한편으로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무자격 교장공모제, 특정 교원단체의 독식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갈수록 힘든 교장 자리라면 서로 하려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아직도 교직 사회에는 한 줄로 세우는 승진제도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체제에 따라 승진을 꿈꾸는 교사들이 넘쳐난다.

 좀 더 너른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승진하는 체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 교장, 교감이 자리가 아니라 교사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해결이 어려운 학교나 학급의 문제를 해결하고,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며, 학교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다. 이젠 교사 문화도 저마다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교사는 공문에서 해방되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수업을 꿈꿀 때 마냥 북유럽이 부럽지는 않을 것이다.

 혁신 교육 10여 년 그리고 미래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도대체 교장의 책임과 역할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다시금 돌아볼 일이다. 권위를 내세운다고 해서 권위가 바로 서는 것은 아니다. 또 미래 교육의 지향점이 공간을 바꾸고, 학교 문화를 수직적인 문화에서 수평적인 문화로 바꾸는 것이라면 기존의 충분조건이었던 인심 좋고, 사람 좋은 후덕한 교장 모습을 뛰어넘어야 한다. 학교를 위해 헌신하고, 수업하며 교장실을 없애고, 교사의 업무를 1/N하는 교장의 모습은 어떨까?

 

 윤일호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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