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깊은 생각] 대통령의 ‘노래 외교(外交)’, 무엇을 바랐을까
[한번 더 깊은 생각] 대통령의 ‘노래 외교(外交)’, 무엇을 바랐을까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3.05.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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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컬림니스트의 한번 더 깊은생각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한미 정상외교 국빈 만찬장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이 노래는 그의 애창곡 중의 하나이다. 1971년 돈 메클린이 작곡 발표하여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를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끈 노래다. 1959년 돈 매클린이 신문 배달하다가 전설적 록가수 버디 홀리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은 것을 알게 된 이후, 영감을 받아 작곡한 추모곡의 일종이다. 노래 가사에는 많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서 밝고 활기찼던 미국이 1950년대에서 암울한 1960년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잘 묘사되었다는 평가다. 2015년에 이 곡의 자필 가사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4억 원에 낙찰되면서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끌었다. 이 곡의 전부를 부르는 데에는 약 8분이 소요되는데, 이날 윤 대통령은 앞부분을 중심으로 1분 정도 불렀다. 그 첫 소절을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래전, 아직도 기억나 / 그 음악이 나를 어떻게 웃게 했는지 / 그리고 기회가 있는지 알았어 / 그 사람들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걸 /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잠시 행복할 것입니다 / 하지만 2월은 날 떨리게 했어./ 내가 전달하는 모든 서류와 함께 문 앞에 나쁜 소식 /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어 / 울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그의 미망인 신부에 대해 읽을 때 /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건드렸다 / 음악이 죽은 날 / 그럼 안녕, 미스 아메리칸 파이)

윤 대통령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깜짝 이벤트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돈 매클린이 직접 서명한 기타를 가지고 와서 선물한 것을 보면 사전에 기획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왜 이 노래가 선정되었을까에 대해 관심이 높았지만,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빈 환영 만찬장에서 하필 추모곡을 선정한 배경도 궁금해진다. ‘So bye-bye, Miss American Pie’로 마무리한 이 노래는 어쩌면 그들만의 메타포에 환호한 것이리라. 그러함에도 한 신문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120명의 기업인을 이끌고 방미하여 120조 원 투자를 약속하고 노래를 만찬장에서 멋지게 부르고 있을 때, ‘코리안 파이’는 잘려 나갔고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는 싸늘한 냉소의 시각을 드러냈다.”

아무튼 큰 박수가 나오고 초대된 내빈들도 모두 흡족했다니 노래를 부른 당사자는 어깨가 으쓱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대사 속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 프로젝트에는 단순히 ‘역사의 되풀이’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때다. 당시 한국에는 윤석중이라는 아주 뛰어난 아동문학가가 보석 같은 동요를 연달아 발표하면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었다. 전후 세대는 누구랄 것도 없이 윤석중이 가사를 쓰고 작곡한 동요를 부르면서 성장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비롯한 〈퐁당퐁당〉, 〈외로워도 슬퍼도〉, 〈어린이날 노래〉, 〈졸업가〉 등 수많은 명곡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그런 윤석중을 196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렀다. 그 이유는 곧 있을 미국 방문 때, 닉슨 대통령 앞에서 부를 노래 하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윤석중은 깊은 고민에 빠졌는데, 바로 1967년 7월 29일부터 7월 31일 사이에 달 착륙에 성공했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떠올랐다. 스스로 무릎을 치며 옳지 이것을 소재로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동요가 바로 〈앞으로〉다. ‘아폴로’라는 우주선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발음하면 ‘아프로’가 되는 것에서 착안한 노래다. 노래 제목을 ‘앞으로’로 짓고 미국과 한국이 손잡고 진취적으로 나가는 모습을 역동적인 동요로 표현했다. 이 노래는 박정희 대통령의 소망대로 주미 한국의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의 자녀들이 연습하여 닉슨 대통령 앞에서 불렸고, 2년 뒤인 1971년에는 국내에 공개되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동요 〈앞으로〉의 가사 전문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에다 라장조의 행진곡풍 합창곡으로 대규모 행사의 제창곡으로 잘 어울리는 노래다. 특히, 유인우주선 ‘아폴로’가 달나라에 착륙한 것을 기념해서 온 세상 어린이의 유대감을 통해서 진취적 기상을 그려낸 노래로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만족했다.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이 노래를 미국 대통령에게 헌정한 의도가 무엇인지가 궁금해진다. 그 인과관계가 소상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 외교’ 이후 정확하게 두 달 뒤에 있었던 박 대통령의 3선 개헌안에 대한 암묵적 승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었다. 정치인의 행위 하나하나에는 전략적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 헌정은 단순한 의례 이상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 외교’를 학습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 외교’를 학습했다면, 그는 어떤 것을 기대했을까. ‘핵 공유’를 외교 성과라 했지만, 미국 언론의 반박 기사로 보아 적어도 ‘핵 공유’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아닌 것 같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을까. 세간의 평은 국빈 방문의 화려함이나 깍듯한 예우에 비해 한국이 얻은 것은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고 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주변국을 적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우리로서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노래 외교’를 통해서 얻고자 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살짝 궁금해진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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