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갈등과 정치권의 셈법
간호법 갈등과 정치권의 셈법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3.05.15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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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야당이 국회에서 일방 처리한 간호법에 대해 정부·여당이 14일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를 분리하고, 간호사의 활동 범위에 ‘의료기관’이 아닌‘지역사회’를 포함함으로써 확대 해석에 따라 독자 활동의 가능성을 만들고, 간호조무사나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허용 가능케 하는 내용 등으로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및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이 법에 반대하며 보건 의료계가 이미 극심한 내홍에 휩싸인 상태이다.

14일 정부와 여당은 고위 당정 협의회를 연 후 “(간호법은) 보건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심대하다”라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은 간호법에 대해 ‘의료체계 붕괴법’ ‘간호사만을 위한 이기주의 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간호사들의 업무 영역 확장으로 “400만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가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당정이 거부권 요청을 공식화함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16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결정할 전망이다. 의사협회를 비롯한 보건의료 단체는 거부권이 이뤄지지 않고 법안이 공포되면 파업 등 강경 투쟁을 선언하고 있고, 반대로 대한간호협회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단체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으로 어떤 경우든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만약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야당이 일방 처리한 양곡관리법에 이어 취임 후 두 번째가 된다. 하지만 앞선 두 법에 이어 야당은 사회적 논란이 큰 ‘방송법’,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등도 단독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의 갈등이 정치권으로 번져 의회를 장악한 야당과 행정부를 책임지는 정부 여당 간에 자존심과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두고 벌이는 정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 보건과 건강에 대한 논쟁보다 치열한 표 계산의 양상으로 변질되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법안으로 이번에 처음 제정되는 법이다. 고령화, 인구 감소로 사회 구조가 바뀌고, 의료·복지 수요가 급격히 커진 상황에서 의료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간호법은 아예 의료법으로부터 간호가 분리되어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는 법안으로 기존 의료법은 간호사의 단독 의료행위를 금지하는 반면 독자적 활동을 포석으로 한다는 지적이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 등에 관한 내용도 간호사뿐만 아니라 전체 보건의료인을 위한 ‘보건의료 인력지원법’이 이미 제정된 상태이다. 이런 보건의료 단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현재 간호법 제정은 ‘정치적 수 싸움’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마디로 정치권이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편 가르기를 통해 오히려 자기편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간호사 편을 는 것은 간호사 단체의 ‘단합력’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간호사 단체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조직화하지만 다른 단체들은 전국적인 조직력이 약하다 보니 간호사 단체가 여론전에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법안을 요구해 온 간호사(45만7,000여명)와 함께 한의사(2만6,000여명)가 찬성하고 있는데 한의사는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되는 간호법처럼 별도의 한의사법 제정을 꿈꾸는 동상이몽의 속셈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반면 의사(13만2,000여명), 간호조무사(72만5,000여명), 치과 의사(3만3,000여명)와 임상병리사(6만5,000여명), 방사선사(5만여 명), 그 외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 등 보건의료 단체 13곳은 간호특혜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표’로만 계산하면 간호법 찬성이 50만 명에 못 미치고 반대 측은 통계에 따라 200만명에서 400만명을 넘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회의 각종 분야에 대한 요구와 서비스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의사, 간호사의 역할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고 과거에는 없던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직업도 생겨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으로 인해 각 분야의 요구와 문제점, 때론 직역 간 갈등과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란 바로 이런 각계각층 간의 이해충돌과 갈등을 조율하고 통합시키는 것이 진정한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간호법 갈등을 바라보면서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조정과 통합, 타협의 정치는 사라지고 각자의 정치적 셈법과 이득, 진영 간의 논리에 따라 지역, 직업, 세대, 성별, 이념 등 수많은 집단 간 이익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라치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눈앞에 이익이 아니라 진정한 국익과 국민을 생각하는 통 큰 정치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사치일까?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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