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세계채소센터를 가다
대만 세계채소센터를 가다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 승인 2023.05.11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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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세계채소센터(World Vegetable Center, 월드백) 종자은행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지난 4월 업무상, 각 나라의 식물 종자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종자은행을 방문하기 위해 대만 타오위안공항에 내렸다. 왁자지껄한 공항 곳곳에는 비빔밥, 김밥 등의 한글이 적힌 간판이 많이 눈에 띄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전광판에 등장하자 한국인지 대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언론에서만 보아오던 ‘핫한 케이(K) 열풍’을 공항 도착 몇 분만에 완전히 체감한 것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한국과는 다른 강한 햇볕과 뜨거운 바람이 먼저 환영 인사를 건넸다. 승용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대만 남쪽 타이난에 자리한 세계채소센터. 공항에서 마주한 대도시의 느낌과는 다른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은 한국과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세계채소센터는 국제기구이다. 세계 각국의 채소 자원 종자의 보존, 육종, 재배, 수확 후 관리와 같은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등 국제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영리 단체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영양 불균형 해소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1972년 아시아 6개국(한국,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베트남), 미국,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함께 설립했다. 1973년 본부를 대만에 두고 기관 명칭을 아시아채소연구개발센터(AVRDC)로 사용했으나 역량 있는 글로벌 기관을 목표로 명칭을 세계채소센터로 바꿨다고 한다.

세계채소센터의 종자은행은 채소 종자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저장고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각 나라에서 수집된 종자의 활력과 특성을 조사한 후 품종이나 활용 목적에 따라 건조실, 단기·중기·장기 저장실 등에 보존한다. 이것은 우리 종자보존 체계와 유사해 보였다.

이곳에는 콩, 가지과, 녹두 등 150개 나라의 65,000여 채소 종자가 보존되고 있다. 자원 수는 계속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세계채소센터는 2024년까지 보유 중인 종자 전체를 우리나라의 농업유전자원센터에 중복보존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종자는 장기저장고에 100년 동안 보존할 예정이고, 만에 하나 세계채소센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센터로 반환하는 방식이다.

필자의 방문은 올해 발송자원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세계채소센터는 국제기구로 우수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왜 자원을 중복보존하고, 중복보존을 위한 나라로 한국을 선택한 것일까?

한국의 농업유전자원센터 종자은행의 저장고는 영상 4°C에서 영하 196°C까지 중장기와 특수저장고로 구성돼 있고 온습도 유지를 위해 3중 벽, 5중 바닥으로 설계돼 리히터 규모 7의 지진과 폭격에도 견디는 국제규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보다 대만과 가깝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현재 세계 10개국의 자원을 중복보존하고 있을 정도로 저장시설은 물론 보존기술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작은 씨앗을 이렇게 소중히 보존하려는 것은 이 씨앗이 싹을 내리고 자라면 인류의 식량이 되고, 기능성까지 확인되면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바이오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우리 정보는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그린바이오 국내시장 규모를 10조 원으로 성장시키고 수출은 5조 원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세계적, 거대 신생기업 15개사를 육성하고 산업화 촉진, 혁신기술 개발, 인력 양성과 산업생태계 조성을 추진한다. 이 계획 중 육성 6대 분야에 종자가 포함된다.

그러나 식량 유전자원은 뜻하지 않은 화재나 전쟁에 휘말려 파괴되기 쉽다. 러시아군 폭격으로 불타버린 우크라이나 국립식물유전자원센터의 씨앗, 2차 세계대전 때 피해를 본 러시아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 200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종자은행, 2012년 시리아 국제 건조기후지역 종자은행의 피해 등이 사례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행을 막고 종자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는 국가 간에 유전자원 쟁취를 위해 날을 세우기도 하지만, 식물자원 멸종 위기에 대비하여 종자를 수탁, 보존하는 협력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올해 업무협의는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10월이면 세계채소센터의 유전자원 수천 점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짧은 체류 기간, 거리나 음식점에서 만난 대만인들로부터 “한국인이세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우리 문화로 낯선 외국인과 동질감을 형성하고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한류 열풍이 음악, 음식을 넘어 종자로까지 확장되어 케이종자 강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를 흔들 그날이 오길 바란다.

남성희<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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