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중요한 물컵 채우기, 公言인가 空言인가
한일관계의 중요한 물컵 채우기, 公言인가 空言인가
  • 안호영 국회의원
  • 승인 2023.05.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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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국회의원
안호영 국회의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일정이 마무리됐다. 12년 만의 셔틀외교 복원이라는 성과로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국민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윤석열 정부가 자랑스럽게 외치던 ‘국익 외교’의 실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절반 이상은 찼고,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공언(公言)했다. 그러나 양국을 오가며 열린 두 차례의 한일정상회담 뒤, 과연 그 물컵의 남은 반은 채워졌을까?

지난 3월의 한일정상회담을 돌이켜보자. 우리 국민은 회담 전부터 충격에 휩싸였다. 가해자 앞에 피해자를 무릎 꿇리는 ‘제3자 변제안’을 우리 대통령이 강제징용 배상문제의 ‘해법’이라고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외교에 오직 국익만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우리 국익은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일본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더 걱정할 정도였다. 더 황당하게도 윤 대통령은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일본 내 회의론까지 해결해줬다.

어디 그뿐이랴. 한일정상회담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국민의 공분을 더욱 증폭시켰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합의 이행 문제 등이 회담에서 논의됐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잇달아 쏟아졌다. 대통령실은 부인하면서도 일본 정부나 언론에 그 어떤 항의조차 하지 않았고, 특정 사안들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거나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의제들임에도 알 권리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우리가 얻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굴욕외교, 참사외교, 국치(國恥) 등 온 국민이 원성과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 회담의 냉혹한 비판을 교훈 삼아 우리 땅에서 열리는 회담은 다를 것이라 기대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또 한 번의 실망과 분노만 되풀이됐다.

역시나 일본의 사죄는 없었다.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으로 시작하는 앵무새 같은 대사를 반복하며,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로 한 ‘가슴이 아프다’는 한 마디로 모든 역사적 책임을 갈음했다. 정부·여당은 이조차도 진일보했다며 박수갈채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부담 갖지 말라”는 당부를 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니,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런 행태를 두고 국민과 국익을 위한 당당한 태도라고 할 수 있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국민 건강, 어민 생존권과 직결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대응은 수준 미달이라는 평가다. 조사권 없는 시찰단 파견으로 자칫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명분만 쌓아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영토주권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역할 또한 무색하다.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명시된 일본의 안보문서 재개정은 언급조차 없었다.

“한일 관계가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일 관계 정상화인가. 빈 컵을 채우는 것은 오롯이 우리만의 몫이었고, 일본은 더 채우라고 더 큰 컵을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

한일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대한민국 국민이 수긍할 정도로 처절하게 반성과 사죄를 하고, 역사 왜곡의 잘못을 먼저 인정했어야 했다. 물컵의 반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한일관계 정상화, 가치중심 외교 같은 온갖 수식어구는 그다음에 붙여도 된다. 본격화된 한일 셔틀외교 속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이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안호영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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