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과 사회보장
가정의 달과 사회보장
  • 김현수 전북대 교수
  • 승인 2023.05.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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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전북대 교수
김현수 전북대 교수

그리스 신화에서 테베의 왕으로 나오는 오이디푸스는 지혜롭고 용감하면서도 매우 도덕적이지만, 비극적 운명에 맞서 고단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 묘사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나 테베로 향하는 고단하고 힘든 여정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여러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테베로 가는 길목에서 여행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답을 하지 못하면 잡아먹는 스핑크스를 만난 일이었다. 그는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대해 사람이라고 답을 하였고, 분노한 스핑크스는 미쳐 날뛰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서 기어다니는 아기를 네 발로 걷는 동물,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는 노인을 세 발로 걷는 동물로 표현하여 청장년에 비해 신체적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묘사한 것은 참으로 절묘한 비유이다. 이 일화를 읽은 많은 사람들은 어린 아이와 노인들의 신체적 미약함을 인식하게 되고, 그들을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족과 관련된 행사가 많은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기 때문인지 5월이 되면 가족과 관련된 생각이 많아지는데, 최근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여건에 따른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 재정립,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노인 세대의 부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대가족을 근간으로 사회 구조가 형성되었던 과거에는 노인 부양 문제가 크게 화두가 되지 않았다. 많은 자녀를 낳는 것은 미래에 가정과 공동체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력의 공급으로 생각되었고, 3대가 함께 살아가는 대가족 구조에서 자녀가 많다는 것은 노인 세대를 부양함에 있어서 부담을 감소시키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의 가족 제도는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6, 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한 핵가족화가 나타났고, 최근에는 여러 사회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는 추세가 심화하여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부양을 책임질 젊은 가족 구성원이 감소하는 과정에서 고령인구의 부양책임은 전통적인 가족 중심에서 사회 또는 정부가 그 책임을 나누어지는 형태로 변해갔다. 정부는 연금의 형태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해왔다. 1960년 공무원연금이 처음 시행된 이후, 군인연금의 분리, 사학연금의 시행을 거쳐 1986년에는 국민연금법이 공포되었고,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행되던 것이 그 적용 대상이 점차 확대되어 2006년에는 전 국민으로 바뀌었다.

연금제도는 확대되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로 인해 고령인구의 사회보장 문제가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연금 고갈 시기가 점차 앞당겨진다는 소식은 연금 납입을 통해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노후 생활을 연금에 의지해야 하는 고령세대 모두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연금 납입금을 증가시키자니 젊은 세대의 반발이 커질 것이고, 국민연금에 노년층을 위한 기초연금까지 도입한 상태에서도 노인 빈곤율이 OECD 평균의 세 배가 넘는 상황에서 연금 수혜를 줄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대해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뿐 아니라 경제성장률과 인구 증가가 정체되는 많은 선진국에서 사회보장 재원의 감소는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나 여기에 대한 확실한 해결 방안을 마련한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빨리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마련할 것인지 좀 더 신속하고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인과 젊은이 모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가족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을 기점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김현수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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