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깊은생각] 적(敵)을 만드는 세상
[한번 더 깊은생각] 적(敵)을 만드는 세상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3.05.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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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칼럼니스트 - 한 번더 깊은 생각
송산 칼럼니스트 - 한 번더 깊은 생각

요즘 뉴스를 보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꼴이 험악하다. 세상에 온통 적의(敵意)가 가득 찬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생을 위한 노련한 대책은 눈을 씻고 보려고 해도 없고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적의(敵意)만 드러낸 채 싸움판을 키우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이 살다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 다기 때문이다. 출생과 성장 배경이 다른 데다가 어떤 사안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다르기에 서로 미워하면서 싸울 수도 있다. 사람 수만큼 서로 다른 세계가 있기에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핏줄을 나눈 형제끼리도 뜻이 맞지 않아 싸우는 판에 정치판의 싸움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두 그들만의 생각대로 그들만의 고집을 표현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이나 태도가 다른 것을 모두 나쁜 것으로, 경계할 일만이 아니다. 다름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다름은 간극(間隙)을 채우는 중요한 전제가 되기도 한다. 다름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가 많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기도 하고, 상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도 한다. 마침내는 진실한 이해를 통해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상생의 길이 되고 공존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적의(敵意)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심지어 카카오 단톡방 등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자주 목격하는 상황이다. 누군가가 어떤 게시물을 올리면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악의에 찬 논쟁을 이어간다. 이해가 다른 계층 간의 문제이거나 정치적 견해라면 예외 없이 논쟁은 크게 확산한다. 마치 길거리에서 맞고함을 지르면서 싸움하듯 서로 대거리를 하면서 적의를 표출하기 바쁘다. 이런 경우는 중재도 쉽지 않다. 극단적으로 편향된 사고 때문에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처럼 아슬아슬한 장면을 지켜보노라면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 이처럼 적의(敵意)로 가득 찼던 세상이 또 있었던가를 생각해 본다. 역대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적의(敵意)가 가득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간첩으로 누명을 씌워 운동권 인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일이 빈번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 맹목적인 적의(敵意)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요즈음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노라면 대부분 거대한 적의(敵意)가 꿈틀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적의에 찬 막말이 횡행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의 우리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걸핏하면 외쳐대던 ‘상식과 공정’이 자취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상생과 조화의 균형감각도 잃어버렸다. 일방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무조건 그르다는 천박한 이분법적 사고에 깊이 빠져 버렸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화의 창을 열어 놓은 것도 아니다. 굳게 닫힌 그들만의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끝없는 적의(敵意)를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와 포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최근 우리 정치판에 가득 찬 이러한 적의(敵意)는 이제 정파의 싸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마저 매우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파끼리, 계층끼리 적의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한 내부 문제라 치자. 최근 정부의 외교관계에서 표출된 적의(敵意)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의 주요 교역국 중국이 우리나라에 적의(敵意)를 드러냈고, 6공화국의 북방 외교 끝에 관개가 크게 개선되었던 러시아도 적의(敵意)를 드러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우리 한반도가 적들에게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 것 같다. 실리 외교를 외면하고 명나라에 몰방하다가 당한 ‘삼전도의 굴욕’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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