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독을 위한 5월의 어느 날
찬란한 고독을 위한 5월의 어느 날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3.04.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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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5월엔 세상의 슬픔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맑고 고요하고 싱싱하고 순결한 5월엔 바람이 노래한다. 어머니의 비취 옥가락지 같은 아름답고 고운 바람이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려 청아한 소리를 내는 달이다. 5월엔 은하수에 있는 사람을 부르면 금방 터질 듯 꽃봉오리로 다가온다. 죽어서도 사람을 위하여 향기를 잃지 않은 장미꽃이 거룩한 사람의 땅에서 꽃을 피운다.

이별을 경험한 나무는 위로의 노래를, 금방 고개를 내민 봄까치꽃과 애기똥풀과 해당화 곁을 지날 때는 ‘환희의 송가’가 물소리처럼 들린다. 5월이 오면 문득 내가 꽃이고 싶어진다. 장미꽃으로 피어나 슬픔이 슬픔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비의 꽃으로 말이다.

한 방울의 향수는 가장 춥고 어두울 때 죽어간 장미꽃의 영혼이다. 꽃은 눈물방울에서 향기가 날 수 있도록 가장 아름답게 서로 위로하면서 죽어간다. 꽃이 꺾이는 아픔을 견디어야 한다는 말을 조상으로부터 들왔을 것이다. 5월의 어느 날 꽃은 죽어야 향기를 낸다는 슬프디 슬픈 전설의 꽃으로 죽는다. 무섭고 떨리는 새벽에 꽃은 꺾인다.

서로에게 기도한다는 불가리아의 발칸산맥 장미계곡의 장미꽃은 찬란한 슬픈 달이다. 겨울을 견딘 혹독한 상처와 무섭고 떨리는 새벽바람의 시련과 고난은 장미꽃 향기로 다시 세상에 나온다. 장미의 향기는 아픔을 경험한 가시에서 난다. 찔린 아픔이 차곡차곡 기억 속에서 향기로 만들어진다. 고통을 몸속에 품고 사는 사람은 스스로 남을 위한 열매로 성장하는 혈투를 벌인다.

체코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시인이며 소설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한 이집트 여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기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장미 가시에 손이 찔렸다고 한다. 가시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 원인지는 몰라도 백혈병에 걸려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했다.

릴케는 몸을 덮쳐 오는 고통과 통증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유서가 개봉되었을 때 독일어로 쓰인 두 줄의 묘비명이 잊히지 않는다.

장미여, 오오 순수한 모순이여/ 겹겹이 싸인 눈꺼풀 속/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나를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의사가 없는 사회에서 각자도생이 창궐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관대함이 사라지고 힘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현실에서 노년에 점점 접근하고 있는 현실이다.

장미꽃이 생을 마감할 때 세상 사람에게 매혹적인 냄새를 기억하게 하듯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꽃에서 배운다. 자비로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캔버스에 온통 옥빛을 뿌릴까? 5월이니까.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삶의 설계가 필요하다. 늙은 동물은 무리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동물의 세계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흥미롭다. 동물에게 배워야 하는 늙어가는 노인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마음이 행복할 때는 장미꽃의 아름다움과 꽃의 향기에 매료된다. 가시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가 힘들고 고단할 때, 최저 임금으로 가족을 꾸려나가야 하는 가난에서는 꽃이 가시로 보인다. 아니, 온통 가시만 보일 때가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상태를 몸으로 느끼는 어지럼증으로 헐떡거리는 위태로운 삶에서 그렇다.

가족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 연장자의 지혜는 어떻게 리더를 해야 하는가. 늙은 동물은 무리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젊은 구성원의 생존에 이바지한다. 아파서 제 몸도 가눌 수 없는 동물은 무리에서 퇴출당한다. 야생 산양의 암컷 무리에서도 늙고 경험이 많은 암컷이 무리를 이끈다. 봄과 가을의 이주 시기에 위험한 산사태와 맛있는 식물이 어디에서 자라는지 등 생존을 위해 기억으로 헌신한다.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이 가족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지혜를 공유할 때 가족으로부터 추앙받을 것이다. 가족이 손잡아주는 5월의 어느 날을 위하여 장미꽃 가시에서 풍기는 향기처럼 아픔을 사랑해본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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