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삶의 질을 생각한다
노년기 삶의 질을 생각한다
  • 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4.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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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숙 원광대 대외협력 부총장
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이번 주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꽃 구경하기 좋은 피크타임 이었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동백, 백목련까지 형형색색으로 핀 꽃을 보며 가족, 친지들과 화사한 외출을 즐기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음처럼 꽃 나들이를 가지 못하는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나는 요양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여성 6인 입원실 창문 쪽 침대의 환자는 거동은 물론 말도 못하는 것 같았고 손목도 묶여 있었다. 누구도 그 환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자해 위험이 있어 손목을 묶어 둔다는 답변이었다. 100세로 자녀들이 연로해서인지 방문객도 없다고 한다. 묶여 있는 환자를 보는 것도 충격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무력감이 느껴졌다.

병실이 한가롭던 어느 날 나는 그분에게 다가갔다. 그날은 손목이 묶여 있지 않았다. ‘오늘은 손도 자유로우시고, 컨디션도 좋아 보이시네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일종의 독백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뜻밖에도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와주고, 말도 걸어줘서 고마워요.”라고 하셨다. 그분의 발음은 또렷했고 다정한 눈빛이었다. 이어서 “손 좀 줄 수 있어요?”라고 하셔서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분은 두 손으로 내 손을 꽉 움켜쥐더니 입으로 가져가 손등을 핥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황하였지만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 손등을 핥고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라면서 손을 슬그머니 놓아 주셨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병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손 등에 닿은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인지 기능 부족이나 치매로 치부하기엔 그분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고 발음도 정확했다. 사람이 그리운 것 같았다. 다시 방문했을 때 그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UN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령화란 전체 인구에서 노인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00년에 노인 비율이 7.2%에 이르러 고령화사회,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로 진입하였고, 2025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인구 수로 보면 1960년에 노인 인구가 100만명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2020년에는 800만명을 넘어 무려 8배 이상 증가하였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3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4.1세이며, 여자(87.2세)는 남자( 80.8세)에 비해 기대수명이 약 6년이 더 높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일본의 기대수명 84.9세를 제외하고 스웨덴(83.7세), 영국(82.3세), 미국(79.7세)보다 높다.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사고로 원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기간을 뺀 나머지 수명을 건강수명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3.1세로 아쉽게도 여자는 약 12년을, 남자는 약 9년을 질병과 함께 보낸다.

인구 고령화는 노동력 부족,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 인구의 감소, 정부의 세수 감소, 고용 둔화 등으로 나타난다. 젊은 세대가 맡게 될 노인부양비도 증가하게 된다. 노인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의 비로 표시하는데, 우리나라는 2000년에는 10.1, 2010년에는 14.8이며, 2050년에는 무려 78.6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노인의 의료비는 유소년 의료비보다 3~4배 더 높으므로, 급격한 고령화는 의료 비용도 급격히 늘어남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하드웨어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노년기를 보내는 개인의 삶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질병으로 보내는 기간은 일상생활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삶의 질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 노년기 돌봄은 청소·빨래·시장보기, 외출 동행, 식사, 목욕 등 신체 기능 유지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 요양기관 다인실에 입원하든지 가정에 머무는 경우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 외로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노인 학대는 가족 등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 비율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현재 일반인들은 노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노인 돌봄방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노년기의 정서에 대해 이해하고 정서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성인,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노인 교육이 필요하다. 노인 교육은 길어진 노년기를 스스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계획할 수 있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이 돌봄을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세대간 갈등을 해소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평생학습사회로 평생교육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고, 지자체와 대학이 연계하여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 교육기관 등이 연계하여 다양한 노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특히 노인의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을 특화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노인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좋겠다. 노인 인권에 대한 공익 광고도 해주면 좋겠다.‘노인도 사람이 그립습니다’라는 카피는 어떨까 싶다. 가족과 사회, 국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노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노년기를 보내도록 노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박은숙<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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