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아픈 가슴에 비수 꽂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농민의 아픈 가슴에 비수 꽂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 안호영 국회의원
  • 승인 2023.04.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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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국회의원
안호영 국회의원

윤석열 대통령은 쌀값 안정화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230만 농민의 아픈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과 같다.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를 통과시킨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민주당은 여러 원안과 개정안을 냈지만 정부여당은 계속 협상테이블에 올리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전가될 상황이었다. 결국 국회의장의 중재안으로 지금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이 적어도 어떤 이유에서 반대하는지, 왜 협상하지 않는지 속 시원히 말해주었으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 통과 전부터 아예 ‘포퓰리즘 법안’이라 폄훼하고 거부권 행사를 운운했으니 일말의 기대를 바랬던 것은 욕심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한 이유는 다섯 가지이다. 첫 번째는 ‘쌀 매입을 의무화하면 구조적 공급과잉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쌀을 사준다고 보장하면 생산량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법안 내용에 대한 의도적 왜곡이다.

개정안에는 생산조정제, 즉 논타작물 재배지원사업을 명시해뒀다. 밀·콩·조사료 등 타 작물의 경작을 유도해 쌀 생산량을 줄일 수 있음은 문재인 정부에서 증명됐다. 2018~2020년 3년간 연간 단 700억 원의 예산으로 매년 2만5천ha 꼴로 쌀 재배면적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당연히 시장격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곡물의 생산량이 증가하니 자급률 제고로 식량안보에도 기여한다. 윤석열 정부가 각각 세 번째, 네 번째 이유로 든 ‘식량안보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 ‘쌀에 대한 과도한 지원은 형평성 논란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자연스레 거짓이 된다.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2021년 18.5%로 OECD 꼴찌를 기록한 곡물자급률을 고려하면, 이 비용은 사회보험적 성격을 가진 필수 지출이다. 게다가 정부는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을 인용해 2030년 초과생산량이 63만톤에 달하고, 매입비용은 1조 4천억 원이 소요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부실한 보고서였음이 작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생산조정제 효과는 과소 추산됐고, 재배면적 감소에도 생산량이 증가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조차 타당성에 의구심을 가졌다면 할말 다한 것 아닌가.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고 한다. 정부·여당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되묻고 싶다. 이미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66.5%가 찬성했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상임위 논의과정에서 안건조정위원회 개최를 요구해놓고 정작 회의에는 불참했다. 2월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도 수정의견을 준비할 시간을 달라더니 대안 하나 들고 오지 않았다.

작년 8월 15일 쌀 20kg 기준 산지 쌀값이 4만2,522원으로 전년 수확기 5만3,535원 보다 20.6%나 하락했다. 45년만에 최대치 낙폭을 기록했음에도 현행법상 시장격리는 정부의 재량이라 실기(失期)해 농민 피해를 키웠다. 언제고 재현될 수 있는 일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양곡관리법에 반대하며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협의는 실종됐고, 거부권 행사로 국회도 부정당했다. 만사 제멋대로 하겠다는 독재 정부다. 무엇보다 온갖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려 드는 혹세무민의 거짓말 정부다. 나쁜 행태만 골라 하는 이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농민을 위한 길은 개정안의 재의결이다. 국민의힘에도 농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양심 있는 의원들이 있으리라 본다. 무기명 투표인 만큼 농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소신껏 투표한다면 재의결도 가능하다. 끝끝내 농심(農心)보다 윤심(尹心)을 받들려 든다면 국민의 심판을 피할 길은 없다.

“양곡관리법을 거부하면 대통령을 거부하겠다”던 농민들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안호영<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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