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소재 탄생의 비결
바이오소재 탄생의 비결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 승인 2023.04.05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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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어느 겨울, 필자가 근무하던 연구소 소장님이 공무 때문에 중국을 방문하셨다가 귀국하시자마자 우리도 ‘이것’을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의견을 내셨다. 이후 “이것”을 위한 연구팀이 구성되고 연구비가 투자되었다. ‘이것’의 효능을 밝히기 위해 외부 연구진들과 협력 연구도 진행했다. 국내에서 새로운 농업 바이오소재가 막 탄생하려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바로 누에동충하초였다.

동충하초는 박쥐나방이라는 애벌레의 몸에서 자라는 약용버섯을 뜻한다. 동충하초 종주국인 중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충하초는 코디셉스 시넨시스(Cordyceps sinensis)라는 학명으로 불리는데, 청해, 서장, 운남성 등 해발 3~4천 미터의 아주 험난한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국내에서는 시넨시스 종이 자랄 수 없다. 동충하초가 자라려면 영양분이 되는 곤충이 필요한데, 희한하게도 동충하초 균은 곤충의 종을 가려서 특정 곤충에게서만 증식한다. 다시 말해서 숙주를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시넨시스 종은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박쥐나방 애벌레에게서만 자란다.

소장님은 중국에서 동충하초를 소개받으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겨울에는 곤충의 몸에 기생하면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여름이 되면 죽은 곤충의 몸 밖으로 자라나는 버섯이라니. 거기다 약효도 좋아 귀한 약재로도 활용된다고 하니 신기했을 수밖에. 결정적으로 1994년 세계육상경기대회에서 연이어 세계기록을 세운 중국 여자선수단이 동충하초를 복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에서도 동충하초를 꼭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단다.

우리 연구팀은 국내 각지를 돌아다니며 결국 눈꽃동충하초라는 토종균을 어렵게 찾아냈다. 이 균을 누에에 심어 여러 해 동안 재배시험을 거친 끝에 드디어 누에동충하초의 인공재배와 대량생산에 성공하게 되었다. 동충하초 인공재배는 세계 최초였다.

그러나 식품공전에는 동충하초 종류와 관계없이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어 동충하초를 사용해 가공식품을 제조할 수 없었다. 연구팀은 동충하초를 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동충하초의 인체 독성 유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누에동충하초가 안전한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으며, 이를 근거로 식품공전에 누에동충하초를 등재하고 식품원료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국내 의료진과 함께 누에동충하초가 인체 효능이 있는지 협력 연구도 추진했다. 그 결과, 항암, 면역력 증진, 간 보호, 항스트레스 효능 등을 밝힐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누에동충하초는 양잠 농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농가의 소득을 높여주는 효자 작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누에고치 생산만으로 소득이 충분치 않았던 양잠 농가들은 동충하초 생산으로 기존 누에고치 생산보다 6배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이후에도 국내산 동충하초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식품, 음료, 요식 산업, 화장품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충하초가 이용되었다. 동충하초가 새로운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성장동력이 된 것이다.

기존의 농업연구가 생산성, 안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동충하초 연구는 농업용 소재를 새로운 식품 원료, 기능성 제품, 의료용으로 개발하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근래에는 세계 농업정책과 연구 흐름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많은 연구자가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에는 동충하초를 연구하자던 소장님의 의견에 연구소 내에서도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런 연구를 하자고 하시지?”, “이게 우리 업무 영역인가?”, “이미 하는 일들도 많은데 왜?” 등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소장님의 설득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돌이켜 보면 사양산업으로 가는 양잠업을 일으켜 보려던 연구자의 고민이며 노력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충하초를 바이오소재로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과감한 결정과 무수히 많은 협업 덕분이었다. 소장님이 동충하초를 접한 후 이 경험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이를 연구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연구팀 간 ‘협업’으로 동충하초의 우수성을 밝혀낸 것이다.

농산물, 축산물, 미생물, 기타 천연물 등 농업 전반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효능을 가진 미지의 바이오소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도 효능연구는 많이 되고 있으나 의료용이 아니라 기능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한국 농업 바이오소재 개발에 작은 소망이 있다. 소재를 발굴하고 대량생산과 식품원료로 활용하는 것은 몇 년의 연구와 노력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수많은 효능 입증에도 의료용 소재로 가기까지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다. 막대한 연구비와 시간이 드는 것도 있지만 해외에서 값싼 소재들도 많이 수입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수한 한국 농산업 원료의 소재 개발을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농업 소재의 발굴, 기능성과 효능의 구명, 안정적 원료 생산, 클러스터 구축 등 모든 과정이 막힘 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하고 이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길 바란다.

남성희<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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