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의 영어 연수와 지하철, 2층버스
런던에서의 영어 연수와 지하철, 2층버스
  •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3.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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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그동안 살아오면서 큰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유럽 고적답사 1년 전인 빈 대학 유학 시절에 어떻게 런던으로 가서 3개월이나 체류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독일어에 자신이 생긴 데다가 그 어려운 라틴어 시험까지 합격했으니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교수가 될 것이므로, 독일어보다 더 필요한 영어를 본고장에 가서 발음부터 시작해 고급 과정까지 마치고 싶었다. 또한 서양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서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로 문헌을 통해 배우겠지만, 삶을 통한 체험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인류 문화에 많은 기여를 한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유럽 본토 학생을 비롯해 많은 젊은 남녀들이 여름철에 영국, 그중에서도 주로 런던으로 가는데 그 이유는 본토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런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해외연수를 하듯이 그들도 학교·직장에서 필요한 영어를 현지에서 배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영국으로 가는 주된 까닭은 첫째로 미국이 너무 먼 데다 유럽에서는 미국 발음보다 영국 발음이 더 인정받으며, 알아듣기가 쉽기 때문이다.

 호화스러운 관광이 아니라 고생을 각오하고 ‘영어 공부’를 위해 떠나는 처지라서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했기에 비행기나 안락한 특급열차는 엄두도 못 내고 캄캄한 밤 속을 달리는 값이 싼 하계 ‘학생수송 특별 열차’를 타야만 했다. 캄캄한 밤중에 계속해서 지나가는 열차 중에서 어느 것을 타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처량했지만, 간신히 열차를 발견해 올라탔을 때는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만원이었다.

신경질이 날 정도로 까다로운 세관 수속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는 육중한 대륙의 열차에 비해 가냘프게 보이는 객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로 양편으로 지나치는 여러 모습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야산 위의 양 떼’였다.

 런던 중앙에 있는 ‘OSCO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숙박을 하며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영국문화협회(British Council)’에서 운영하는 피트먼 스쿨(Pitman School)의 영어강좌를 수강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특히 주말에 “런던에서 살면서 불만이라면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기 좋다는 런던 시내 여기저기를 구경하기로 했다.

 영어 강좌를 들으러 가기 위해 런던 시가지를 거미줄처럼 이어놓은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으며, 당시에는 빈과 뮌헨 그리고 서울에 지하철이 없을 때인데 그중에서도 매일 타고 다니던 중앙선은 파리의 메트로보다 낫다는 느낌이 들었고, 차 내의 시설도 일류지만 차 안의 손님도 멋있어 보였다. 2~3분 간격으로 끝이 잘 안 보일 정도로 긴 전동차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데 그 안의 손님들의 모습 또한 이색적이었다.

  남녀노소 거의 모두가 신문이나 잡지를 비롯해 무엇인가 읽고 있어 역시 ‘1등 국민답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대륙에서도 보기 드문 특이한 현상이었으며, 수준 높은 ‘런던 타임스’부터 노동자들이 즐겨 읽는 ‘데일리 미러’에 이르기까지 특색을 지닌 신문이 있다는 것은 지적인 영국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날씬한 체격에 지팡이와 신문을 들고 영어로 말하는 교양이 있어 보이는 남자들을 볼 때면 영국 신사, 즉 ‘젠틀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상 교통의 주역을 맡고 있는 생전처음 타보는 ‘2층 버스’는 뒤집힐까 봐 불안하기도 했지만, 2층에 있던 노인들이 짧은 시간에 하차하는 것은 숨 가쁜 일이었으며 날씬한 런던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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