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천양정과 궁도(弓道)
전주 천양정과 궁도(弓道)
  • 박지원 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 승인 2023.03.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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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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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궁도협회 행사에 방문하기 위해 다가공원에 있는 천양정에 다녀왔다. 천양정은 1712년 조선시대 숙종 38년에 건립되어 현재 3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활터다. ‘천양’은 뚫을 천(穿), 버들 양(楊)자로 ‘화살로 버들잎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 활쏘기의 명수가 백보 앞의 버드나무 잎을 화살로 꿰뚫어 맞혔다는 고사를 비롯하여 신궁으로 불린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사로부터 유래한 말이라고도 한다. 전주에는 조선시대 천양정, 다가정, 군자정, 읍양정 등 4개의 사정(射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천양정만이 남아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면면이 전해져 내려오는 전주 궁도인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양궁 선수단이 세계적으로 독보적 위상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나라 양궁의 역사는 60여년 정도인데 비해, 활쏘기 자체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 고대로까지 올라간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나 ‘진서’ 등에도 부여 및 마한에서 활을 주요 무기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애당초 ‘동이’의 ‘이(夷)’자가 ‘대(大)’와 ‘궁(弓)’의 합성어로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주몽 설화나, 조선시대 아지발도의 투구끈을 맞춘 이성계의 황산대첩 등은 지금도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가 있기에 택견, 씨름에 이어 ‘활쏘기’가 2020년에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천양정에서 본 행사 과정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초몰기(첫 몰기)’에 성공한 사원(射員)들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몰기(沒技)란 ‘1순’으로 불리는 5발의 화살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을 뜻하는데, 천양정에 입사(入射)한 지 7년 넘게 지났는데 드디어 첫 몰기에 성공했다며 감격스러워하는 사원의 모습에서 순수한 마음과 열정이 느껴졌다.

이쯤 되면 활터에서 국궁을 취미로 즐기는 방법이 궁금해질 터이다. 사실 전국 각지에 약 3~400여 곳 되는 활터가 있어 차량으로 1시간 이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취미활동을 즐기는 동호인 규모 측면에서는 정규 사거리를 쏠 만한 장소가 부족한 양궁보다도 국궁의 저변이 넓다고도 볼 수 있다. 천양정에 입사(入射)를 하려면 사범과 면담 후 입사원서를 제출하고 통지를 기다린다. 소집통보를 받고 사장의 훈시, 환영 인사를 듣고 나면 사범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데, 2개월간 기본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주살지도가 끝나면 집궁(執弓. 처음 활을 잡는다는 뜻으로 ‘활을 쏘기 시작함’을 이르는 말) 날짜를 잡고 직전 선배와 오찬을 하며 격려를 받은 뒤, 오후에 많은 사원의 참석 하에 집궁식을 한다. 집궁자가 1순을 발시(發矢)한 뒤에는 소연이 이어지는데, 집궁식을 마치면 집궁자의 호칭이 신사(新射. 지역 국궁장의 신입회원을 의미)로 바뀐다.

사대에서 145m의 원거리로 쏘다보니 상당한 장력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힘과 기술이 많이 필요하기에 의외로 오랜 수련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오직 이같은 원사 방식만 고집하다 보니 어린 학생들이 궁도를 친숙하게 접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과거 활쏘기는 말을 타면서 쏘기도 하고 근거리와 원거리 등 다양한 과녁을 맞혔으나, 현대 국궁은 서서 하는 145m 원사만 존재하기 때문에 걷거나 달리는 과정에서의 동적인 활쏘기가 없고, 이에 따른 추가적인 재미나 운동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천양정의 전통을 지켜나가면서도 생활체육 종목으로서의 저변 확대를 위해 학교 클럽활동이나 근거리 수련장 등이 추가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박지원<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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