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일본의 진정한 사죄가 우선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일본의 진정한 사죄가 우선
  • 박희승 법무법인 호민 대표변호사
  • 승인 2023.03.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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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법무법인 호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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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깜짝 방문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한 후 “일본은 평화가 회복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전후 재건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에 일본이 재건사업의 핵심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회담에 앞서 키이우 도착 직후 외곽도시인 부차를 방문해서 “이곳에서 일어단 잔인한 행위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하면서 러시아를 향해 “국제 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치욕”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과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사죄 문제는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사죄를 한 적이 있는가.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전범국 중의 하나이면서도 미국의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나라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된 사죄를 하고 있지 않다.

일본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의 대표적인 전범국가인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1970. 12. 7.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바르샤바 내 유대인 학살 등 만행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를 했다. 전 세계 언론이 독일 총리의 반성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회고록에서 ‘독일 역사의 심연에서, 그리고 수백만 명의 희생자에 대한 무거운 짐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을 나는 한 것이다’라고 했다.

브란트의 무릎 꿇기 반성은 독일이 어두운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상징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독일 총리들(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앙겔라 메르켈)은 나치가 저지를 과거사에 대해 꾸준히 사죄하고 반성을 해오고 있다. 독일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꾸준한 반성으로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이미지도 나아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과거사에 대해 독일은 반성하고 있는데 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패권국이 된 미국이 독일과 일본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범죄자로 다뤄 나라가 분단되었지만 일본은 분단도 되지 않았고, 일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후 냉전시대가 되면서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으로서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승전국 못지않은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이를 기화로 일본의 우익들은 일본이 일으킨 일련의 전쟁을 대외 침략과정이 아닌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침략을 타파하고 일본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다. 일본 우익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조선이 일본의 철도 등의 부설로 근대화되었다는 주장)도 그 주장의 일환이고, 일제 강점기에 병탄한 독도에 대해서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대외침략이 있는 그대로 서술되지 않고 파렴치하게 미화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이후 6일 발표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국내기업의 배상안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웃나라 일본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맺는 게 좋다는 데에 누가 반대를 할 것인가.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러한 한일관계 접근법에는 주체적인 역사인식과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과거는 덮어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동기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일본의 조선에 대한 역사적 과오에 면죄부를 주려는 동기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논의한 토대를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일부 일본 언론보도를 보면 일본의 사죄는커녕 강제징용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야당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일본의 호응은 고사하고 사과 한마디 들지 못한 ‘빈손’ 외교이자 일본의 기만 잔뜩 살려주는 외교참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마치자마자 우크라이나로 가서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대해서 비난하면서 전후복구에 참여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외교는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사죄도 하지 않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빠른 전후회복과 경제성장을 이룬 점을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비난하면서 전후복구에 참여하려는 일본의 이중성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는 결코 지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박희승<법무법인 호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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