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친구(바보상자)
또 다른 친구(바보상자)
  • 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 승인 2023.03.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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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은 보고 느끼는 평가 방법의 차이는 있겠으나 가슴 깊이 새겨진 삶의 진한 감동들이 모아진 추억의 산물일 것이다.

아직도 종이신문을 보시는 독자층들은 어릴 적 소중한 추억들이 많을 진데, 70년대 텔레비전은 집안에 보물이자 부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동네에서 있는 집과 없는 집을 구분 짓는 척도가 되기도 했었다. 브라운관을 고급케이스로 포장하고 양쪽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주름문짝과 네 개의 다리를 붙여 만든 텔레비전은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이도 휘황찬란했었다.

동네에 한 대뿐인 텔레비전을 대청마루에 설치해 놓으면 동네사람들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여앉아 함께 시청하곤 했었다. 최대한 높은 나무에 안테나를 세웠지만 전파가 약했던 시절이라 영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TV를 이리저리 옮겨야 했는데 워낙 귀한 물건이다 보니 조심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었다.

가끔 골프경기를 하다 보면 재미를 위해 약간의 내기를 하게 되는데 대개 첫 홀은 화면조정의 시간이라고들 한다. 전력도 기술도 빈약했던 그 시절 한동안 깜빡거리다 켜지던 흑백텔레비전을 빗댄 진풍경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오후 5시 30분에 방영하는 타잔이라는 프로그램은 동네 아이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는데, 단련된 근육질 ‘타잔’이 밀림에 자생하는 줄기를 타고 날아다니며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활약에 환호했고 정 많고 아리따운 제인과 치타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었다. ‘전우’와 ‘전설의 고향’은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겨 보는 프로였고 ‘수사반장’도 인기 탑이었으나 그 어떤 프로보다 김일 선수가 일본 선수와 싸우는 프로레슬링 경기는 아무리 바쁜 농번기에도 어른들까지 텔레비전 앞에 모여 독립투사라도 된 것 마냥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함께 싸웠는데 김일 선수가 연신 두들겨 맞다가도 어느 한순간 박치기 세 번으로 상대선수를 쓰러뜨리고 역전시킬 때면 함성소리가 온 동네를 뒤흔들곤 했었다.

놀이문화가 별로였던 그 시절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임에도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라디오나 독서와는 달리 ‘바보상자’라고 치부하며 못 보게 하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참으로 야속하기만 했었다.

당시 방송사는 두 곳뿐으로 광고가 있는 방송사와 그렇지 않은 곳, 정치 등 시사방송이 많은 방송사와 그렇지 않은 곳으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방송사와 다양한 채널이 넘쳐나고 심지어 요즘 텔레비전은 지난 프로그램도 언제든지 다시 불러와 볼 수 있는 기능은 물론 각종 프로그램의 구성과 시간마저도 개인별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조절 가능하다니 가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그만큼 전자기술이 발달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현대인들의 다양한 니즈와 눈높이에 맞추려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영업 전략이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최근 발생했던 코로나로 인해 플랫폼기업의 홈쇼핑채널 등의 엄청난 매출신장과 함께 부가적으로 각종 물류와 택배산업도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모 방송사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들의 바람과 감성을 파고들었다. 필자도 자주 보는 편인데 고립무원의 외진 환경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모습에 반해 즐겨보는 편이다. 어떤 출연자는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하필 본인이 몹쓸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며 비관하다가 산속에 들어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벗하며 생활하다 보니 건강도 회복되고 마음도 행복해졌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멍텅구리 바보상자로 치부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사람과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와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친숙한 친구가 아닐까 싶다.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겠지만 지친 직장인들에게는 간혹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속에 푹 파묻혀 지내는 주말이 색다른 재미와 재충전의 한 방법이라고들 한다. 오늘 밤에도 온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화목하게 모여 앉아 오순도순 희망과 행복의 이야기꽃을 피워보면 어떨까 싶다.

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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