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깊은생각] 우리는 지금 내일을 잊었는가
[한번 더 깊은생각] 우리는 지금 내일을 잊었는가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3.03.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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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칼럼니스트 한번 더 깊은생각
송산 칼럼니스트 한번 더 깊은생각

지난해 12월 30일 넷플릭스에서는《더 글로리》라는 8부작 드라마를 개봉한 바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문동은(송혜교)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한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고등학교 자퇴 후 교사가 되었지만, 학창 시절에 당했던 학교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복수의 화신으로 등장합니다.

한편, 학교폭력의 가해자 박연진(배우 임지연)은 부유한 집안의 엄친아로 자라면서 가난한 문동은을 잔인하게 괴롭힙니다. 박연진이 괴롭힌 아이 중에는 사망에 이른 아이도 있습니다. 문동은의 복수가 시작되면서 박연진의 과거 행적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위대한 싸움(?)을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본격적인 복수전은 제2부작 《더 글로리 2》에서 펼쳐진다고 합니다. 그 결과야 뻔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없는 처절한 복수만 가득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새로 출범하는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가 5년 전에 있었던 자녀의 학교폭력 관련으로 스스로 물러나는 촌극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공직 후보자 사전 검증의 부실 여부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 또한 치열합니다. 대통령실은 일단 공직 후보자 사전 검증 절차를 보강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진화에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필자는 위의 드라마 《글로리》와 이 사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잊히거나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때고 다시 불쑥 나타나서 당사자의 목줄을 움켜쥐고 흔들어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치권의 인사청문회에서 보는 많은 웃음거리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과거에 일어난 것으로 안이하게 대처했거나 무시했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보듯 필자는 가끔 우리에게 과연 ‘내일이 있는가’라는 엉뚱한 질문을 떠올리곤 합니다. 필자가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순전히 추측으로 행간에서 흘려들은 이야기로 재구성해 봅니다.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다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 다른 학교로 전학하라는 벌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 기술자의 조언대로 소송을 걸어 시간을 끌다 보면, 대학 입학 이후의 일이 되고 마는 기막힌 사실 앞에서 장단을 맞췄을 풍경이 그려집니다. 이 나라의 어떤 부모라도 그런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말 ‘내일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렇게 간절해지는 이유입니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어야 하지만,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일탈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피해자가 바로 회복될 수 있도록 따뜻이 보듬어주고 도와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가해자는 그 잘못 때문에 상종 못할 인간이라도 되듯 민․형사소송을 걸어 단죄하고 배제하려는 것이 최선인지 돌아볼 일입니다.

과연 그런 노력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어느 순간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다’라는 쓸쓸한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다가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그들은 함께 살아야 시대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어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착한 아이 아니면 나쁜 놈으로 나누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식을 키우는 부모 처지에서 서로 배려하고 포용했더라면, 그리고 원칙과 대도(大道)를 선택했더라면 우리는 그 아픔을 통해서 한층 더 성숙했을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했던 일들이 훗날 보복으로 이어지고 제 목줄을 죄는 덫이 되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은 항상 위험합니다. 최근 우리 정치판에도 내일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불안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마치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듯 극한 싸움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니체는 긴 사다리를 가지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이 내려가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뜻에서입니다. 남을 보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보는 혜안, 오늘만 볼 것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는 삶, 그리고 정치를 기대해 봅니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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