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동원 굴욕 해법은 폐기돼야 한다
강제 동원 굴욕 해법은 폐기돼야 한다
  •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 승인 2023.03.0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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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국회의원
안호영 국회의원

지난 6일 윤석열 정부는 치욕적인 발표를 했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회견을 통해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한다”라고 밝혔다.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손해를 입은 한국인에게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 산하의 재단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돈을 걷어 배상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면죄부를 주고, 전쟁범죄 기업들이 배상할 돈은 우리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대신 내도록 하는 굴종 외교 선언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사과도 없이 가만히 있는데 피해자들끼리 돈 걷어 병원비를 내는 셈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무릎 꿇게 만든 윤 정부의 굴욕스러운 행태에 울화통이 치민다.

1910년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침략하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전선을 확장했다. 전쟁에 쓸 군인과 물자가 부족해지자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식민지인 한국에서 물자와 사람을 끌고 갔다. 강제 동원된 한국인은 전쟁터, 탄광, 군사시설 공사장, 군수공장 등에서 노예처럼 취급당하며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또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을 발표한 뒤 한국 여성 수십만 명을 강제 징집해 군수공장에서 혹사하거나 일본군 성노예로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기밀 유지를 이유로 집단학살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대일항쟁기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때 군인, 군무원, 노동자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는 약 78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일본은 사과나 배상은커녕 강제징용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를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이“강제 동원 등 불법행위는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므로 배상 책임이 일본 기업에 있다”라며 1인당 1억원씩 배상토록 판결하자 발끈했다. 2019년 7월 갑자기 일본이 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했고 한일관계는 경색됐다. 그런데 왜 가해자인 일본이 아니라 피해자인 한국이 먼저 숙여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한 ‘제3자 변제방식’은 강제 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것으로 법치의 부정이다. 삼권분립의 훼손이며 민주주의의 파괴다. 법률적으로도 논란이 있다. 민법은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제3자가 채무를 대신 갚아 줄 수 없고, ‘제3자’도 채무자와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제 동원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굶어 죽을지언정 그런 돈은 받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고, 재단은 일본 기업과 ‘이해관계’도 없다. 따라서 제3자 변제방식으로 종결은 불가능하다. 또한 양국간 합의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 일방적 선언이라 되돌리기조차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한 결과이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몇 푼 집어주면서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전범 기업의 부담까지 한국 기업에 전가하는 것은 피해자를 능멸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것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의 치적을 쌓기 위해 피해자가 30년간 외롭게 싸워 찾은 권리를 짓밟았다. 한반도 불법 강점은 없었고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국가 역할도 져버린 외교 참극이다. 한국 전경련과 일본 경단련이 조성한다는 미래청년기금도 치욕적 결과를 가리려는 전형적 물타기에 불과하다. 한반도 불법 강점과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장학금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윤 대통령은 “대한독립운동은 못했어도 정권퇴진운동은 해야겠다”라는 국민의 분노에 귀 기울이고 반역사적, 반인권적, 반국가적인 일방적 투항 외교 선언을 철회해야 한다. 해법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든 윤 정부는 강제 동원 굴욕 해법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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