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Red Queen) 가설과 협동의 진화
붉은 여왕(Red Queen) 가설과 협동의 진화
  •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3.03.08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붉은 여왕(Red Queen)은 영국의 작가이자 수학교수인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붉은 여왕이 사는 거울 나라에서는 제자리에 멈추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이동해 버린다. 그 자리에 멈춰 있으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금 달리는 것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만 한다. 이곳은 한 사물이 움직이는 만큼 주위의 환경도 그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 시카고대학 생물 진화학자인 밴 베일런 교수(Leigh Van Valen)는 1973년 “새로운 진화 법칙”이라는 논문에서 ‘붉은 여왕 가설’을 발표하였다. 이 가설은 ‘더 빨리 진화하는 상위 10%의 생명체만 살아남고 상대적으로 진화가 느린 90%는 도태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 중 90% 이상이 멸종하였는데 그 이유는 진화하지 못한 생명체뿐 만아니라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화하는 생명체도 멸종한다는 것을 붉은 여왕 가설을 통해 주장했다.

환경에 적응했던 생명체라도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되면 그 생명체 역시 도태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생명체가 그 환경에 적응해서 다른 생명체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끝없이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을 ‘붉은 여왕의 효과’라고 한다. 붉은 여왕의 가설과 효과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다.

진화학자들은 16세기 초 모리셔스 섬에 살던 도도새가 멸종을 당한 이유를 이 가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도도새를 위협할 포유류가 없었기 때문에 도도새는 비행능력을 잃게 되었고 인간과 원숭이에 의해 멸종되었다. 경영학자들도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발명했던 필름으로 유명한 코닥(Kodak) 회사가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한 경쟁 회사 때문에 파산한 사례를 붉은 여왕 효과로 보고 있다. 교육 분야도 붉은 여왕 효과가 접목되어 있다. 청나라 학자인 좌종당(左宗堂)은 ‘學問(학문)은 如逆水行舟(여역수행주)하여 不進則退(부진즉퇴)니라’ 하였다. 이 말은 학문을 하는 것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끝임 없이 정진하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2016년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모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범위와 깊이 그리고 속도 면에서 상당한 시스템 충격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서막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이 발언 이후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술인 인공지능(AI) 기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AI 연구 개발 단체인 오픈 AI(Open AI) 샘 알트만 CEO가 2022년 12월 1일 테스트 버전을 일반 공개한 챗GPT(ChatGPT)가 전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AI 기반 챗GPT는 이용자와 실시간의 대화도 가능하고 글쓰기 능력도 탁월하다. 챗GPT의 작문 능력이 입증되면서 챗GPT는 연구 논문의 저자로 등재됐고 학생들에게 부과된 숙제도 챗GPT를 활용해서 제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세계적인 학술지들은 도구로서의 챗GPT 가치를 인정하지만 논문 저자 자격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교 당국에서도 챗GPT를 통해 작성된 과제가 제출되었지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불확실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생존하여야 할까? 찰스 다윈이 말한 것처럼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들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열중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미국 생물학자인 매사추세츠 엠허스트 대학 교수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는 ‘연속 내생 공생이론’을 통해 진화는 경쟁을 통해서 아니라 공생을 통해서 이루진다고 주장했다. 현실에서 규명된 ‘종의 기원’ 사례들을 살펴보면, 진화는 무한경쟁의 원리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생을 통해서도 이루어져 왔다.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생존투쟁과 무한경쟁만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의 하나가 기후변화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면서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인류는 큰 대가를 계속 치러야 하고,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우리 앞에 닥친 커다란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무한경쟁의 시장원리만 강조하면 기후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지구가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는 현재에는 협동과 공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