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40> 차의 길 43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40> 차의 길 43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3.03.05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상의친필본「초의행병소서」(박동춘소장)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강진에 유배돼 처음 머물게 된 주막집 방, 서당이라고 부르기에는 보잘것 없는 방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니 이곳은 서당이 되었다. 다산은 이방을 사의재(四宜齋)라 하여, 맑은 생각(思), 엄숙한 용모(貌), 과묵한 말(言) 신중한 행동(動)을 해야하는 곳으로 불렀다. 이곳에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바로 황상(黃裳, 1788~1870)이다.

황상은 당시 15세 소년이었다. 배움에 있어 자신의 미흡함에 주저하는 황상에게 ‘삼근계(三勤戒)’를 써주며 학문에 정진하게 했다. 삼근이란 “파고드는 것에 있어 부지런(勤)하면 되고, 이치를 트이게 하는 것 또한 부지런(勤)하면 되고, 갈고 닦는 것도 부지런(勤)하면 된다.”는 것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 확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황상을 아꼈던 다산은 아들과 함께 유람을 떠날 때도 함께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하지만 다산이 거처를 초당으로 옮길 때 황상은 부친상을 당하고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으로 더이상 강학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에 백적산에 들어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 땅을 일구며 살았다. 이렇게 40년을 은거한 선비 황상은 60세 이후에야 세상에 알려진다. 이때가 다산이 세상을 떠난지 10년 후이다. 추사는 황상의 시를 읽은 후 다산의 아들 유산 정학연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다산의 제자 두루 꼽아보아도 이학래 이하로 모두 이 사람에게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 뭍으로 나가 그를 찾았으나 상경했다고 하여 구슬피 바라보며 돌아왔습니다.”
 

추사가 제주 귀향에서 풀린 1848년 12월, 뭍에 올라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황상이다. 하지만 길이 어긋나 만나지 못하고 훗날 황상을 만나게 된 추사는 그의 인간 됨과 시에 감탄을 하고 황상의 시집에 서문을 써준다. 추사는 그의 시에 대한 높은 평가는 물론 그를 위해 글씨를 써주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만남은 황상이 20대 초에 잠깐 만난적이 있는 초의를 연결하는 끈이 된다. 황상은 일지암(一支庵)으로 초의(草衣)를 찾아가 40년 만에 재회를 하게 되며 「초의행」이라는 장시를 쓰게 된다. 처음에는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깊어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의 목소리와 행동을 보고 과연 초의인가하는 의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60세가 되어서 만난 이들, 서로를 알아보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세월의 흔적은 겉모양을 바꾸고 모든 것이 변하였지만, 음성과 행동을 보고 젊은 날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는 마음과 신념은 변하지 않았음이다. 황상도 ‘초의차’의 명성에 대해 추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의에게 「걸명시(乞茗詩)」를 보내 초의 차를 칭송한다.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명선(茗禪)이라는 아름다운 호 추사께서 주셨고

  초의차(草衣茶)의 명성은 유산에게 들었네.

  나의 계곡에는 남쪽의 은택이 미치지 않으나

  오히려 좋은 물있어 살만하다네.

  그대에게 청하노니 자용향을 아끼지마오

  향기로운 차도 속된 배 창자에서

  서너 번 돌아서 나오는 것이니.

 

시 앞부분은 소문으로 들은 중국의 차 이름만 무성하고 귀만 따가울 뿐 초의 스님이 만든 차가 최고이다는 내용이다. 찻잎을 덖는 솜씨 초의 스님이 집대성했으며 자자한 명성은 추사와 유산에게 들었으니 좋은차 나에게도 주시오하는 말이다. 아무리 향기로운 차도 사람의 속된 배속의 창자에서 서너 번 돌아서 나온다고 하니 너무 아끼지 말고 고루 나누어 음미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