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봄꽃이다”라고 불러주면 꽃 핀다
“너도 봄꽃이다”라고 불러주면 꽃 핀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3.02.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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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br>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너도 봄꽃이다”라고 불러주면 봄꽃 핀다. 나이 듦의 불가피한 사회적 고립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아닌 봄꽃처럼 아름답다고 말해줄 때 꽃 핀다. 외로움이 꽃으로 핀다.

향기는 꽃의 언어다. 목련꽃차 향기를 맡으면 옛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겨울의 시련이 향기로 스멀스멀 가슴에 파고들면 입으로 그 맛의 희로애락을 듣는다. 따뜻한 찻잔을 양손으로 꼭 붙들고 있으면 심장 박동 소리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들린다. 목련꽃이 지난겨울에 견디어 낸 눈보라와 폭풍우가 찻잔에 조용하게 흔들린다.

목련꽃차는 그리움이 담긴 색이다. 그리움이 담긴 맛이다. 그리움이 따뜻함으로 우러난다. 찻잔에 일렁이는 그리움이 꽃으로 핀다. 피어난다.

찻잔의 목련을 퍼즐 맞추듯 나무에 매달린 순백색의 꽃을 불러낸다. 아홉 장의 꽃잎 중 세 장은 꽃받침이고 여섯 장은 꽃잎인데 갈래꽃으로 꽃잎이 나뉘어 있을 꽃을 찬바람이 시샘하듯 휘몰아친다.

눈 지그시 감고 목련차 향기에 하얀 목련꽃을 떠올려 본다. 냉이와 꽃다지도 봄을 알리는 전령이지만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이 단정하게 피어나는 목련의 몸매가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여인, 외롭고 슬퍼 보이는 여인 같다.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생명력에 힘을 얻는다.

목련차가 나를 마신다. 매일 삶의 행복을 저울질해보는 이기적이며 투쟁적인 성격에서 탈피하라고 목련차가 내 기억을 청춘으로 끌고 다닌다. 열정이 불타오르면 봄꽃 피겠지.

돈키호테가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이 떠오른다.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을 찾고 죽는다”는 말이다. 기사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고 싸우는 나의 영혼이 찻잔을 들었다가 놓는다.

목련 꽃망울이 탱탱하게 여물어가기 위해 햇살 한오라기라도 붙잡고 있을 나무를 조용한 그리움으로 불러본다. 목련 꽃망울은 향을 가득 품고 있을 때 나를 위하여 한 모금 위로해 줄 차가 되기 위하여 햇볕에 몸을 맡겼을 터. 겨울과 봄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꽃이어서 겨울을 이겨낸 어깨가 기울어졌다. 겨울과 봄 틈새에서 만난 목련차 향기에 온통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목련으로 보인다.

백목련은 청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웨딩드레스처럼 화사한 꽃은 마른 입술을 적신다. 입 가장자리가 촉촉했다. 마음에 담긴 괴로움을 끌어안을 것 같은 너그러움이 있는 꽃이다. 목련차 한 모금이 누군가의 슬픈 외로움을 녹여준다. 아, 따뜻함이여.

세계적 진화인류학자여 옥스퍼드 대학 진화심리학 교수인 로빈 던바 Robin Dunbar는 “우정의 효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친구가 없다는 것, 소속감의 부재, 사회적 고립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몬다”라고 했다. 목련차를 함께 마실 친구가 옆에 있었다면 목련 향기가 봄꽃처럼 기쁨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친구는 종종 상처를 치유해주는 치료약일 수도 있고, 삶을 싱싱하게 끌고 다니는 영혼의 비타민이다. 친구가 외로움을 공감해주며 다독다독 어깨를 만져준다면 고독은 풍요로운 사랑으로 변화될 것이다.

“너도 봄꽃이다”라고 불러줄 친구가 그립다. 우정이 얼마나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지 나이 듦이 스멀스멀 쓸쓸함을 건드린다. “우정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감을 상승하게 하며 면역력을 높여서 실제로 암이나 심장병 치매 등의 발병률을 유의미하게 줄인다.”라고 로빈 던바가 저술한 책 『프렌즈』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한다. “건강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친구라고 강조한다.

친구는 나와 아무 말을 나누지 않더라도 생각이 같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사이다. 친구는 내 얼굴의 미소를 보는 동안 내 눈의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더라도 나란히 있어 주는 사람 그런 친구 같은 예쁜 후배가 조용히 앞자리에 앉아서 반쯤 비어있는 찻잔에 물을 채운다.

목련차가 나를 마신다. 후배의 온화한 모습이 내가 그리워하는 따뜻한 친구처럼 보인다. “너도 봄꽃이다”라고 불러주니 그녀가 꽃으로 핀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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