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물을 줘야겠다
어서 물을 줘야겠다
  • 이경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 승인 2023.02.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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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지난 2011년으로 기억한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故최고은씨의 죽음으로 세상이 충격에 빠졌다. 그것도 죽음의 원인이 생활고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더 했고 이로 인해 일명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이 탄생됐다.

 한 개인의 이슈는 예술계와 사회에 큰 변화를 주었다. 문체부와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예술정책의 방향이 전환되었고 특히 예술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사회와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고 보호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문제는 수년 후 예술인복지법이라는 제도로 증명됐다. 그리고 최근 예술인의 권리보장 등 보편적 복지로 제도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시민들이 공감하고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직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예술인데 왜 우리의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냐”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을 거다. 그리고 수학 문제 풀 듯 명쾌한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앞선 질문에 지혜로운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이 문화재단의 역할이다. 지역 문화예술의 진흥과 활성화, 그리고 시민 문화력 증진이 문화재단 설립의 목적이다. 예술의 가치와 기능이 한 개인의 창작행위를 넘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고 시민과 어떤 방식으로 맞닿아야 할지 많은 고민들이 있다. 그리고 올 한해의 시작점에서 전북문화관광재단이 그간 축적한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예술 지원의 변화와 개선 등 대안책 마련에 분주하다.

 우선, 예술지원의 다수가 예술인의 창작활동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환경과 요구에 맞물려 전북만의 예술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려 한다. 지역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누린다는 것은 지역 콘텐츠 다양성의 과제이고 지속가능한 생태계에 있어서 창작자의 중요성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창작자인 예술가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치밀한 성장관리시스템을 마련 중에 있다.

 또한 예술 생태계에서 소비시장에 관한 문제도 중요한 개선 과제 중 하나다. 지역이라는 여건상 중앙에 비해 열악한 창작환경은 물론 그럴싸한 소비·유통시장이 부족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다. 창작의 열정과 시간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작업실 한켠에, 혹은 컴퓨터 폴더에 남아 있어 이 숨겨진 보물들이 일상의 근거리에서 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제 주인과 짝을 만나도록 주선하는 사업도 구체화할 계획이다.

 답안지를 작성해가는 과정에서 과연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지원만이 답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최근 ESG경영 가속화에 따라 기업·기관의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 모델이 메세나 사업으로 제안되는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즉 기업의 투자가 예술가와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이 단순한 공식을 함께 풀어갈 기업들을 발굴하는 것도 큰 과제다.

 글을 마치려니 사무실 한켠에 있는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취임 때 받은 키 작은 식물이 그새 많이 자랐다. 땅에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단단한 나무로 뿌리 내리기까지 적당한 바람과 햇빛, 물을 주는 주인의 정성이 필요하듯 예술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가만히 보니 흙이 말라 있다. 어서 물을 줘야겠다.

 이경윤<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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