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간 동상이몽, ‘필수 의료 강화 논란’
의·정간 동상이몽, ‘필수 의료 강화 논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3.01.3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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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갑자기 ‘필수 의료’라는 말이 보건의료의 키워드가 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병원에서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당시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었던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그간의 오랜 의료계의 각종 현안 이슈들이 다시 ‘필수 의료’라는 화두에 연결되어 논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필수 의료’ 인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의 설립을 주장한다. 그러나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편에서는 중증 질환에 대한 수가가 낮아서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며 이러한 부문에 대한 수가를 충분히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렇다면 ‘필수 의료’란 무엇인가? ‘필수 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필수 의료의 범위에는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중증 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관한 의료서비스나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꼭 필요하지만 지리적 문제 또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하여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의료서비스가 해당한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필수 의료는 꼭 필요하지만, 진료, 검사와 치료에 큰 비용과 인력, 장비 시설, 시간, 노력 등이 사용되어 효율은 떨어지는 가능성이 큰 의료분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의료가 붕괴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그 무엇보다 필수 의료분야의 낮은 수가가 원인이 되는 경우다. 우리나라 의료 수가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볼 때 48% 정도로 OECD 국가의 평균인 72에도 훨씬 못 미친다. 2017년 기준 자연분만 수가는 미국이 1만 1,200달러이고 한국은 1,040달러에 불과하다. 이번 아산병원 간호사 사례에서 필요한 뇌 혈종제거를 위한 개두술도 약 142만 원에 불과하여 일본의 662만 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둘째, 필수 의료분야의 의료사고나 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악의적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책임보험, 조정·중재, 합의, 형사처벌 특례조항 등 비 형사적 구제 방법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환자나 응급의료 분야 대신 미용·피부·도수치료와 같은 소송 위험이 적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셋째,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역학적 변화에 따른 의사 인력 수급의 불균형도 문제다. 저출산 문제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었음에도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분야의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미흡했다.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필수분야 의사의 배치나 전체 전공의 인력 수급 계획에 인구 역학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의사 수급의 불균형이 나타났다. 넷째, 최근 사회 전반의 워라밸 추구도 영향을 끼친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MZ세대 젊은 의사들은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희생을 감수한 선배 세대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전공의 인기 과목도 힘들고 위험한 수술을 하는 필수분야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업무 부담이 적고 편한 인기 과로 학교 성적 최상위 학생들의 지원이 몰리는 현상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아무튼 앞선 간호사 사망사건 이후 의료계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 언론 등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여야 3당 국회의원 18명이 공동 주최한 ‘필수 의료분야 의사 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제시한 필수 의료 살리기 해법으로는 의사 수 확대, 병상 수 감축, 중소병원 감축, 의료지원 인력(PA) 활용, 해외의사 도입, 공공임상교수제, 필수 의료 수가 인상, 의료기관 인력 투자 보전 등 다양한 정책적 제안이 나왔다. 대체로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의 신설 등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의협이나 병원협회 등 의료계에서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으로는 필수 의료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산부인과 의사가 전공과목을 포기하고 피부, 미용 진료를 하고 있고,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노인 요양병원에 취업하고 있는 예를 보듯이 필수 의료를 전공한 의사 수를 늘려도 앞서 제시한 필수 의료 위기의 원인, 즉 ‘낮은 수가 문제’와 ‘법적 제도적 장치’ 등 근본 원인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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