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부족 시대’ 종자를 지키는 이유
‘자원 부족 시대’ 종자를 지키는 이유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농업연구관
  • 승인 2023.01.31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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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을 곰팡이에 비유할 때가 있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존재감이 나타나지 않거나 품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 어리바리한 행동을 하거나 외모가 지저분한 사람에게 사용한다. 18세기 프랑스 식물학자인 S.베이야르는 “곰팡이는 저주받은 종족이며, 자연을 어지럽히기 위해 악마가 고안해 낸 발명품이다”라고까지 말했을 정도로 곰팡이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하지만 곰팡이는 억울하다. 곰팡이도 엄밀히 따지면 최소단위의 식물 종자이며, 생태계에서 분해자 역할을 하고 다양한 식품 원료로 활용되는 등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동충하초를 들 수 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동충하초는 국내에서는 단어조차 생소한 버섯이었다. 동충하초는 버섯 포자에서 시작된다. 포자가 살아있는 곤충의 몸을 뚫고 들어가 곤충을 영양분 삼아 증식하면서 버섯으로 자라난 것이 바로 동충하초이다. 이러한 생성과정 때문에 동충하초는 곤충병원성 곰팡이라는 용어로 먼저 알려지게 됐으며, 곤충에게 병을 일으키는 나쁜 미생물로 인식되어 보이는 즉시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동충하초가 약용버섯이자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며 불로장생의 3대 묘약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동충하초 속 코디세핀이라는 물질이 항암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국내에서도 동충하초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1990년대 초 티베트 원주민들은 4월에서 6월까지 야생 동충하초를 채집해서 인근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중국 동충하초(시넨시스)는 1kg당 약 300만 원에 거래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원 채취가 어려워져 값어치가 폭등했다. 지금은 kg당 값이 고급 외제차 한 대와 맞먹는다고 한다.

동충하초가 금보다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다 보니 주변 나라의 버섯 채집전문가들이 티베트로 몰리며 티베트의 동충하초는 씨가 마르게 되었다. 급기야는 채집자 간에 발생한 소유권 분쟁이 큰 싸움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얼마 전 언론에 따르면 중국 쓰촨성 티베트족 자치주에서는 동충하초 채집권을 두고 마을 간 싸움이 일어나 6명이 사망하고 110여 명이 다쳤다고 한다. 싸움에는 수류탄과 소총까지 동원돼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종자전쟁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미국 스탠포드대는 히말라야에서 자라는 동충하초가 과도한 수확과 기후 온난화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앞으로도 생태계 파괴, 무분별한 채취, 지구 온난화 등으로 동충하초는 점점 희귀해질 것이며, 인근 국가 거주민들과 중국 약초전문가들이 몰려들어 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라 전했다.

야생자원의 멸종 위기는 비단 동충하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식량위기 속에서 종자 등 농업유전자원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으나 야생자원의 확보는 한계에 달했다. 더욱이 환경파괴, 기후 온난화, 병해충 증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종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체 식물 중 21%가 농경과 목축 등으로 파괴되고 벌목, 건축, 기후변화, 외래종의 침입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농업유전자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지켜나가야 할까?

우리나라에는 농업유전자원센터가 있다.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세계적 규모의 첨단 무인 자동화 종자 보존시설을 갖추고 식물, 동물, 미생물, 곤충 등 유전자원을 영구 보존하여 세계 5위 종자보유국에 맞는 위상을 갖추고 있다. 올해 기준 종자, 영양체 등 식물유전자원은 총 3,124종 275,722자원을 보존하고 있다. 이렇게 보존한 유전자원을 탐색, 특성 평가하여 활용도를 연구하고 있다.

지구상에 분포하는 식물유전자원은 30만 종에 이른다. 그 중 천연물질 성분과 효능이 밝혀진 것은 5천 종에 불과하니 아직 수많은 식물유전자원이 유망자원 후보로 남아있다. 우리가 노력을 들여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성희<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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