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31) 김윤배 시인의 ‘유혹’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31) 김윤배 시인의 ‘유혹’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01.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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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 김윤배 시인

 

 우리 거미 연인으로 만나 서로를 파먹으면 안 될까?

 서로의 무덤을 지어주고 무덤을 포획하면 안 될까?

 은밀한 밤을 골라 거미줄을 치고 걸려들게 하면 안 될까?

 거미줄 위에서 위태로운 정사를 치르면 안 될까?

 불투명한 바람이 거미줄을 흔들기 전에 서로를 감아주면 안 될까?

 수십 겹의 거미줄 속에 지하궁전을 세우면 안 될까?

 다른 밤 같은 달빛을 지하궁전으로 불러들이면 안 될까?

 찰랑이는 거미줄에 이슬을 걸어 서로의 마음을 전하면 안 될까?

 증오가 칼끝처럼 빛나는 시간을 축복이라고 말하면 안 될까?

 말들이 비린내를 풍기며 상하는 가슴을 숨겨주면 안 될까?

 끝내 새벽은 오지 않는다고 무덤 속에서 절망하면 안 될까?

 

 <해설>  

 이 시는 거미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사랑의 생애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제 졸시 중에 거미줄에 대한 짧은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산다는 것은”입니다. “산다는 건/ 허공에/ 거미줄 하나 쳐 놓고/ 숨어 기다리는 거다/ 몰래/ 노리는 거다/” 우리도 거미처럼 “내 인생에 꼭 한번은 기회가 오겠지” 하면서 세상에다가 거미줄 하나 쳐 놓고 노리며 사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에 나오는 두 인물처럼. 고도(godot)를 기다리지만 고도의 정체는커녕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 김윤배 시인의 시 “유혹”은 그 대상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맞붙어 그 대상과 처절하게 사랑을 합니다. “찰랑이는 거미줄에 이슬을 걸어 서로의 마음을 전하며” 상대를 유혹해 “수십 겹의 거미줄 속에 지하궁전을 세우고” “달빛을 지하궁전으로 불러들이겠다”는 달콤한 말로 속삭입니다. “우리 거미 연인으로 만나 서로를 파먹으면 안 될까?” 하고 목숨 걸고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고백하면서 유혹의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유혹의 결과, 마침내 “거미줄 위에서 위태로운 정사”를 치릅니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증오가 칼끝처럼 빛나는 시간마저 축복의 시간”이며, “말들이 비린내를 풍기며 상하는 가슴을 숨겨” 줍니다. 그들의 지독한 사랑은 “끝내 새벽은 오지 않는” 절정에 이릅니다. 시의 첫머리에서 복선으로 제시한 “우리 거미 연인으로 만나 서로를 파먹으면 안 될까?”라고 유혹하던 말을 책임이라도 지듯 서로 무덤을 지어주며 생을 사랑으로 마감합니다.
 

 이런 거미의 사랑이 흥미로워 더 찾아보았더니 거미는 교미가 끝나면 암컷 거미는 사랑하다 지친 수컷의 몸을 양분 삼아 새끼를 부화시키고, 새끼가 든 풍선을 지고 다니다 종족을 세상에 흩어버리고 나서 수컷 따라 산화(散花)한다고 하는군요.
 

 삼라만상 중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 하다 생을 마감하는 생물이 또 있을까요. 사랑하고 증오하는 인간의 성정에 비하면 고귀하게 느껴집니다. 오직 ‘지독한 사랑’만 존재하는 거미의 사랑이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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