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58> 용(龍)을 잡는 기술 ‘屠龍技(도룡기)’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58> 용(龍)을 잡는 기술 ‘屠龍技(도룡기)’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23.01.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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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기(屠龍技)”, 즉 “용을 잡는 기술”이란 말이 있다. ‘장자(莊子)’가 출전이다. ‘어떤 사람이 용을 잡는 방법 배우는데 전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런데 어디에 용이 있겠는가? 그 재주를 쓸데가 없음을 말한 것이었다. 풍수 고전 ‘의룡경’도 이 문장을 인용한다. 그런데 ‘의룡경’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인용한다.

“용을 잡는 기술이 장차 멧돼지 잡는 것보다 못하다. 멧돼지는 많고 용은 드무니 어찌 어리석지 않으랴. 이에 대해 어리석은 자들이 비웃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덧붙일까!”

여기서 멧돼지는 자잘한 명당을, 용은 제왕이 나올 땅을 말한다. 단순한 제왕이 아니라 건국 시조, 즉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와 같은 인물을 말한다. 건국 시조는 몇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다. 그래서 ‘용(龍)’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용을 잡는 것은 무망한 일이라 하였다. 누군가 “용을 잡겠노라!”고 하면 비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과 한반도에 수많은 왕조가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백 년씩 명멸하였다. 건국 시조는 용을 잡은 이들이었다. 한때 전주를 도읍지로 후백제를 건국하였던 견훤을 “지렁이 자식”이라고 ‘삼국유사’는 서술하였다. “상주에 사는 부잣집 딸에게 밤마다 자주색 옷을 입은 사내가 찾아와 잠을 자고 돌아갔다. 아버지가 딸에게 바늘에 긴 실을 꿰어 사내의 옷에 찔러 놓으라고 했다. 이튿날 그 실을 따라갔더니 큰 지렁이였다. 그리하여 낳은 아들이 견훤이었다.”

후백제는 고려에 망했다. 패자의 역사는 비참하다. “용”이 아니라 “지렁이”로 격하된다. 반면 역사서는 왕건을 어떻게 서술했을까? “왕건의 조부는 당나라 황제의 아들인데 서해 용왕 딸과 결혼해 왕륭을 낳았다. 왕륭은 왕건을 낳았다.” 왕건의 직계 조상은 당나라 황제와 서해 용왕이었다. 지렁이 아들 견훤[후백제]과 용의 아들 왕건[고려]이 대비되지 않는가? 승자와 패자에 대한 역사 서술법이다.

그러한 ‘용’이 전북에 있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전주 모악산 김일성 시조묘·부안 변산 월명암·고창 선운산 도솔암 등은 ‘용’의 땅이다. 특징은 주변 산세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풍수에서 바위는 양날의 칼이다. 잘하면 그 칼로 대권을 잡지만, 자칫 그 칼의 희생자가 된다. ‘조선왕조실록’조차도 풍수에서 바위의 의미를 논할 정도였다. 바위와 풍수의 중요함을 짐작할 수 있다.

임실 상이암은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처로 유명하다. 왕으로 계시받은 곳이다. 상이암으로 이어지는 석맥(石脈: 용맥)이 큰 특징이다. 승진을 앞둔 고위관료나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와서 은밀히 기를 받는 곳이다.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바로 직전 서울의 몇몇 언론사 간부 10여 명과 1박2일로 전주·임실·순창 명당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분들을 만나면 김일성 시조묘로 알려진 모악산 명당을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부안 변산 월명암 역시 규모는 작으나 강한 바위 기운으로 왕기를 품은 곳이다.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대종사도 월명암에서 기를 받았다(얼마 전 원광대 총장으로 취임한 박성태 교수는 그의 손자다).

최근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센터장 김대식 전 카자흐스탄 대사)가 역점 사업으로 ‘전라북도테마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용(龍)’의 땅들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전북이 자랑할 만한 좋은 곳들이다. 개개인들에게 답사를 통해 무엇을 주어야 할까?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기운·희망·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용’의 땅들은 전북이 갖는 소중한 관광자산이다. 잘 보존·활용함이 중요하다. ‘도룡기(屠龍技)’가 필요한 때이다.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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