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깊은생각] 계묘년(癸卯年)의 소망,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한번 더 깊은생각] 계묘년(癸卯年)의 소망,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2.12.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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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깊은생각
한번 더 깊은생각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새해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있다. 내년은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해’로 노력한 만큼 복이 들어오는 운수대통의 새해라 한다. 오래간만에 듣는 희망의 말이다. 유난히도 싸움이 가득했던 올해이고 보면 기대를 할 만도 하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을 보면 그리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서 걱정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나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로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잘못은 있는데 이를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말이 선정되기까지의 뒷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사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리숙한 방어논리가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일파만파(一波萬波) 커지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한 탓일 것이다.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고치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애써 민심과 대척점을 만드는 것이 측은해 보였다.

아무튼 ‘과이불개(過而不改)’는 우리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라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이 2위이고, ‘달걀을 포개놓은 것처럼 위태롭다’라는 뜻의 ‘누란지위(累卵之危)’이가 3위라고 한다. ‘잘못을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라는 뜻의 ‘문과수비(文過遂非)’가 4위이고, ‘눈먼 자들이 코끼리 만지듯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한다’라는 의미의 ‘군맹무상(群盲撫象)’이 5위라고 하였다. 그 순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하나 같이 잘못된 상황을 방관하고 오히려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는 의미다.

대학 교수들의 진단이 이러할진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은 훨씬 더 심각하고 위태로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을 탓하면서 안이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우리는 오늘의 삶을 성찰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새길을 마다하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우리는 크게 퇴보하거나 정체하고 말 것이다.

새해에는 지는 게임을 그만하고 이기는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 왜 우리는 좋은 기회를 이렇게 망가뜨리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獨裁)의 어두운 터널을 건넜고, 국민적 여망을 담아 민주화를 완성했고 마침내는 선진국의 반열에 섰던 경험이 있다. 암담한 시기가 있었지만, 참고 견디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어떤 나라보다 탁월했다. 작금의 한류 열풍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값비싼 희생을 통해 학습해 온 정치와 문화, 경제에 대한 저력은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고무하는 사회 시스템을 재가동해야 한다. 잘못을 거울삼되, 잘못을 탓하면서 싸우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다음으로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할 수도 있다. 궁색한 논리로 때우려는 우둔함을 보이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거짓은 필연적으로 거짓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는 말마다 말꼬리를 잡히면서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용기를 갖자는 이야기다.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 거울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다행한 일 아닌가.

다음으로는 편을 갈라 다투지 말고 함께 가는 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왜 내 편 네 편이 없을까마는 그것은 경기에서만 유효한 것이어야 한다. 승부가 결정되면 갈라져서 낯 붉히며 싸울 일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새롭게 경쟁하면서 함께 사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모두가 미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하나가 죽어야 당(黨)이 살고, 하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논리는 매우 편협하고 위험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 옳을 수 없듯 상대의 주장이 절대 틀릴 수도 없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 진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 모두 초록이라면 얼마나 단조로운 세상이 될까. 몇몇 모이는 작은 모임에서도 이런 일이 수두룩하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세상에는 나만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 관계가 꼬이면 삶 전체가 복잡하게 망가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서로 보듬고 이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흔하게 쓰는 말 ‘아전인수’라는 말이 왜 이렇게 낯설고, ‘상식과 공정’이 왜 그렇게 옹색한지 모르겠다. 모두가 선택적 수사(修辭)로 쓰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이것이 불신을 조장하고 집단적 증오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남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는 진실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내년에는 모두 상생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성장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나날이 이어지는 따뜻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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