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모여 대규모 무리를 형성하는 철새처럼
가족이 모여 대규모 무리를 형성하는 철새처럼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12.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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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br>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수십 년 등을 받쳐준 쿠션은 빈센트 반 고흐가 삶을 불태워 만든 작품 「꽃 피는 아몬드나무」 그림을 품고 있다. 색이 퇴색되고 모양이 일그러졌지만 굽어져 가는 등허리를 곧게 떠받쳐주는 고마운 등 받침이다. 결핍과 소외감과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하고,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희망을 안겨주는 등 받침이다.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고흐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정을 듬뿍 색으로 그려낸 그림이다. 조카의 존재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던 고흐는 봄의 신령처럼 그렸다고 한다. 겨울의 맨 끝자락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아몬드나무는 고독했던 자신에게 가족의 의미를 심어주는 그림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긴 꽃이 봄의 전령이었다.

새는 이동성에 따라 텃새와 철새로 구분한다. 계절에 따라 번식지와 월동지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생활하는 새가 철새이다. 철새는 찾아오는 시기와 머무는 기간에 따라 다시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 길잃은새로 구분한다.

겨울철새는 무리를 지어서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수십에서 수만 개체에 이른다. 그러나 번식지에서는 이처럼 무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영역을 여유 있게 확보하고 치열한 경쟁과 다툼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겨울철새가 무리를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강 하굿둑 가창오리 군무를 보면서 마치 허공에 글을 쓰는 것 같아 경이로웠다. 허공을 무대로 음악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십만 마리의 군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의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노을이 들기 시작하면 비행하다가, 착륙하다 되풀이하는 가창오리 떼의 비행을 보면서 신기함에 앞서 편대비행의 기본적인 형태가 궁금했다.

V자 편대에서 앞선 새의 날갯짓이 상승기류를 만들어 뒤를 따르는 철새는 상승기류가 제공하는 양력에 힘입어 적은 에너지로 더 멀리 비행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새가 힘들고 위험한 선두의 자리에 서느냐 하는 것이다. 거친 바람을 처음으로 가르며 전진 저항에 고스란히 맞서 비행하는 일, 최적의 항로와 고도를 탐색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 천적의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목숨을 건, 맨 앞에서 나는 새는 어떤 새일까 궁금했다.

휘청거리는 생을 견디며 살금살금 관계 안으로 접근하는 외로운 사람에게 그 소외감을 견디게 만드는 것은 격려의 말이다. 관심이 담긴 진정한 대화가 고독사를 이겨낼 수 있고,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고 싶은 충동에서 행복을 건져내는 ‘사람’으로 바뀐다. 그냥 흘러가는 말이 아닌 따뜻한 손으로 매만져 주고 등 껴안아 주는 사람이 그립다. 점점 ‘섭섭함’이 목소리를 낮추게 하고 사람과 부딪히는 소리를 두려워하게 한다.

가장 힘이 없는 누군가가 눈물로 호소할 때 겨울철새처럼 저들만의 특별한 활력소인 <소리>로 소통하였으면 한다. 다가가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강한 자가 필요하다.

이동 중인 새의 무리는 소리를 통해 서로를 격려한다. 무리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주로 뒤쪽에 있는 경험 많은 새들이 담당한다. 소리는 선두에 있는 선도자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의미가 있다.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속도로 비행하는 데 필요한 구령의 역할도 한다.

격려의 소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 더불어 공유하는 믿음과 희망의 신호로 작동한다. 겨울철새 무리의 이동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리더의 통솔력에서 비롯되는 조직력과 질서, 구성원에 대한 배려이다.

겨울철새가 무리로 이동하는 이유는 천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고 천적에 대한 경계의 역할도 분담한다. 서로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가창오리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힘차게 떠오르는 모습을 본다. 아빠 새가 맨 앞에서 날기도 하고 맨 먼저 내려앉기도 하는 리더의 아빠 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지만, 가장의 소임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대규모의 군무 무리도 소규모의 가족이 모여 찬란한 형상을 하늘에 수놓는다. 가족으로부터 배려와 무리의 질서를 습득한다. 그러면서 행복은 가족으로부터 얻는다는 의식을 터득한다.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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