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국악 큰잔치, 전북 국악의 세계화 신호탄
송년 국악 큰잔치, 전북 국악의 세계화 신호탄
  • 정영신 前 전북소설가협회장
  • 승인 2022.12.20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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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함박눈이 날리고 있었다. 금세 또 찬비가 내렸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12월, 섣달 겨울밤, 너무 추웠다. 지인의 소개로 국악원(도립국악원장 이희성)에서 마련한 ‘송년 국악 큰잔치’가 볼만하다기에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손발이 얼듯이 너무 추워서 참 망설여지는 외출이었다. 아마 이 엄동설한에 관객도 별로 없을 거로 생각했다. 내가 좀 늦긴 했지만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계단도 많고 어두컴컴한데다가 비와 눈이 섞여 길조차 미끄러웠다. 공연장이 가까워지는데도 별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두세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이 추위에 다들 집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건지산자락까지 올라오겠는가. 뭐 얼마나 재미있는 국악공연을 한다고. 그런데 막상 친절한 안내원의 손전등 도움까지 받으며 공연장에 들어서자 나는 하마터면 “와-”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언제 들어왔는지 공연장은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내 자리만 비어 있었다. 오프닝 갈라 쇼로 이미 창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1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송구영신(送舊迎新), 새로운 전북, 송년국악 큰 잔치’가 열렸다. 처음으로 창극을 보러 갔다. 해학창극이다. 정선옥 희곡작가가 고전 심청전을 해학적으로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아주 맛깔나게 창극으로 각색했다. 제목부터 호감이 간다. ‘호랭이가 답싹 물어갈 뺑파야’다.

그게 창극이었을까. 어린시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남부시장에 갔다가 매곡교와 전주교 사이 지금은 주차장이 들어선 그 자리에 천막으로 얼기설기 무대를 만들고 남장을 한 여자배우들이 춘향이와 이도령, 향단이와 월매로 변장을 해서 ‘사랑가’ 등을 부르며 소리와 연기를 실감나게 하고 있었다. 그 노랫가락과 배우의 연기가 어찌나 어린 내 마음을 사정없이 붙잡든지 집에 갈 줄도 모르고 해가 지도록 그 창극이 다 끝날 때까지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넋을 놓고 울다 웃다가…… 그 극 속에 빠져있었다. 그 남자배우가 어찌나 멋지게 연기를 잘하던지 웅성웅성 남잔가 여잔가 궁금해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답을 알려주기 위해 몰래 그들이 옷을 갈아입던 천막을 들추고 들어갔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정답은 그 멋진 이도령은 여자였다. 그러나 다음 장날에 또 그 자리에 가서 심청전 창극을 구경했는데 심봉사는 진짜 나이가 좀 드신 중년의 남자배우였다. 그리고 몇십 년 만에 이렇게 참으로 오랜만에 또 창극이란 것을 직접 또 관람하게 되었다.

나는 나는 미씨 뺑 나는 나는 전주 뺑파/인생이란 짧드라 아침이슬처럼 반짝허드라/즐겁게 즐겁게 살아보세(신나게 신나게 살아봐)/유행 따라 패션 따라 치마를 싹둑 자르고(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연지 곤지 짙게 바르고 향수도 한번 뿌려보자~~(우리도 한번 뿌려보자)사모님 소리가 절로 나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한번 둘러봐(둘러봐 둘러봐 둘러봐둘러봐둘러봐)국산품이여 안녕 (안녕 빠이빠이~~)노후 대책을 세워보자 (노후 대책을 세워봐)자식 덕 보기 글렀으니 한탕해서 한몫 잡자(한탕해서 잘살아보세)(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잘살아 잘살아 잘살아보세~~)

미씨 뺑파의 대사다. 뺑파는 심청전의 뺑덕어멈이다. 뺑파는 김세미 배우가 맡았고 심봉사역은 이번에 특별출연을 한 왕기석 배우가 맡아 혼신의 힘을 다 쏟아내며 열연을 했다. 또 뺑파와 바람이 난 건넌마을 뺑파의 옛 애인 황칠이역은 박현영 배우가 맡았는데 어찌나 연기를 구성지게 잘하던지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해학창극의 백미는 맹인들의 ‘황성궁궐노래자랑’이었다. 맹인들 모두 황후가 된 심청이의 초대를 받아 궁궐에 가다가 황성주막에서 개최한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되는데 맛보기로 이 갈라 쇼에서는 남자줄봉사들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신나게 부른다. 또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여자줄봉사들은 1958년에 가수 황정자가 노래한 ‘꽃바람 님바람’을 마치 여자 아이돌그룹인양 아주 매력적으로 신명나게 부른다. 심봉사는 이 노래자랑에서 우승하여 많은 상금을 받는다. 하지만 뺑파와 황칠이가 밤에 몰래 심봉사의 돈을 훔쳐 달아나 버린다. 뺑파와 황칠이는 숲속에서 심판자 호랑이를 만나 눈이 멀게 되고 심봉사는 무사히 황성 궁궐에 가서 심청이를 만나 그 감격에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되고 행복한 시간을 맞게 된다. 창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엔딩 인사를 하자 관객들은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냈다. 요즘 인기 절정인 트로트오디션을 연상하게 하는 익숙한 ‘황성맹인노래자랑’은 정선옥 작가의 역량을 돋보이게 하는 매우 참신한 장면이었다.

이 ‘호랭이가 답싹 물어갈 뺑파야’ 해학창극은 내년에 군산예술의 전당과 한국예술회관연합회의 국립단체공연작으로 이미 예약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해학창극과 대금산조 협주곡, 진도씻김굿 악가무 등, ‘송년국악큰잔치’에 초대된 공연들로 인해 모악당에 관객이 꽉 들어찬 걸 보니 우리 국악의 세계화가 멀지 않은 것 같다. 계묘년 새해에는 더 신명나게 우리 국악 공연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 한류의 중심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영신<前전북소설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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