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모자 쓰고 진료하기
산타모자 쓰고 진료하기
  • 박영삼 전주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 승인 2022.12.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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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삼 전주 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박영삼 전주 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어느 중년 남성 한 분이 외래를 방문하셨다.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쉽게 말을 하지 못하셨다 “아버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하고 물어보니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셨다. 얼마 전에 정년을 하셨는데 그때까지 대중목욕탕을 못 가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젖꼭지가 세 개여서(다유두증) 그랬다는 것이다. 정년한 뒤에 시간이 되어서 치료받기 위해 방문하셨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좌측 유두 밑 10cm정도 하방에 같은 크기의 유두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걸 보면서 ‘맘고생 많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제가 바로 해결해 드릴께요” 하고 며칠 뒤에 수술 스케쥴을 잡아 국소 마취하에 약 2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유두 하나를 간단히 제거하고 상처를 예쁘게 봉합해주었다. 상처도 잘 낫아서 “아버님, 이제 목욕탕도 마음껏 가셔도 됩니다.”라고 이야기 드렸고 환자분도 만족스런 얼굴로 가셨다.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혼자 너무 고민을 하셔서 오랫동안 맘고생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올 한해도 벌써 다 지나고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온다. 12월 초 부터 우리 병원은 전북에서 자랑할 만한 이쁘고 큰 성탄 츄리와 장식이 병원 안과 밖의 여러 곳에 꾸며지고, 여러 행사가 진행된다. 그 중 하나로 임상과장들의 성탄 축하 칸타타가 있다. 1~2달 전부터 바쁜 일정 중에도 틈틈이 모여 합창, 율동, 악기 등을 연습한다.

실재 공연할 때 산타모자를 쓰고하는데, 청중들 반응이 좋다. 5년 전에도 칸타타를 잘 마치고 그 산타 모자를 가지고 외래에 내려왔다. 그 모자를 보니까 한 번 외래를 볼 때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나서 모자를 쓰고 진료를 봤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겠지 했는데, 막상 모자를 쓴 상태로 진료한다는 것이 은근 부끄러웠다. 그래서 쑥스러워 모자를 썼다 벗었다하기도 하고, 또한 계속 쓰고 있으며 머리가 더워져서 땀도 났다. 그래도 환자들이 “산타할아버지 같아요”, “멋있어요”, “메리크리스마스!” 등의 반응을 보여 주며 웃어주어 좋기도 했지만, 쑥스럽고 좀 오버하는 것 같아 이 이벤트를 계속해야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유방암 재발로 항암치료 중인 한 환자분이 외래에 들어오면서, 피식 웃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전에 외래를 오시면 얼굴이 어둡고 웃는 모습이 없으셨던 분이셨다. 이 환자분의 미소 짓는 표정을 보면서, 이런 이벤트는 계속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매 년 성탄절이 들어있는 주간에는 외래에서 산타모자와 성탄분위기 나는 마스크를 쓰고 환자들을 진료한다. 진료실 들어오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메리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말하면 환자와 보호자들도 활짝 웃으면서 “과장님도요” 하는데, 너무 좋다.

작년에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으셔서 “제가 모델할거니까 잘 찍어서 많이 자랑하세요” 라고 이야기 하며 사진을 같이 찍기도 했다. 힘든 항암치료 받는 환자들이나, 암 치료 받고 추적관찰 중인 환자들은 병원에 오는 자체가 부담이 되고, 마음이 힘드실 건데, 이렇게라도 잠깐의 위로와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인 것 같다.

가끔은 다른 병원 유방 갑상선 보는 의사선생님과 같이 성탄절 주간에는 외래에서 성탄모자를 쓰고 진료를 보는 작은 이벤트라도 같이 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약하고 낮을 자를 위해 사랑으로 오신 성탄의 의미를 잊지 않아야겠다.

외래에 오시는 환자분들에게 인사하는 인사말로 글을 마치고 싶다.

“메리크리스마스! 올 한해도 무사히 건강하게 지내온 것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내년에도 더 건강하세요.”

박영삼 <전주 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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