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동 추억
구천동 추억
  • 이한욱 前 정읍시애향운동본부장
  • 승인 2022.12.0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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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욱 前 정읍시애향운동본부장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핼러윈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당하는 대형참사가 일어난 것은 이세상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사고에 대비한 안전관리 매뉴얼 부재와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빚어진 예고된 재난이었다.

애도 기간 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 부부에게 큰아들로부터 어머니 생신 기념겸 가족여행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팔 학년 삼 반이 된 아내가 건강도 별로 좋지 못한데 코로나로 인하여 팔순 잔치도 건너뛰어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다.

아들은 반가워하며 11월 12일과 13일 주말을 이용하여 1박 2일 무주구천동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한다.

슬하에 4남매 모두 공무원 가족이다 보니 평일에 시간을 낼수가 없어 부득이 주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고향에서 사는 큰아들과 큰딸 가족은 정읍에서 출발하고 둘째 아들과 막내딸은 서울에서 출발해서 무주와인동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드디어 약속한날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우리내외와 큰아들 가족이 함께 노란 물감으로 물들여 놓은 것 같은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나 시가지를 빠져 나갔다.

국도 1호선으로 전주 시내를 관통 익산 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익어가는 가을풍경을 즐기며 무주와인 동굴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둘째 아들과 막내딸 가족들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들은 반가운 마음에 엄마품에 어린아이처럼 덥석 안긴다. 와인동굴에 들어가 와인을 시음해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피로도 풀 겸 동굴 안에서 가족 모두가 족욕탕에 함께 발을 담그니 오순도순 지내던 가족들의 옛날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족욕을 마친 일행은 미리예약한 구천동에 있는 리조트를 향하여 이동했다.

구천동은 참 오랜만에 오게 된것같다.

전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이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어 내가사는 내장산 주변의 가을풍경과는 다른 마치 유럽에 온 느낌이랄까?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리조트에 도착하여 체크인하고 방배정을 받아보니 커다란 객실 2개가 널찍하고도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울려 내집같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무주읍에 소재한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주들까지 16명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잔치 같은 분위기 속에서 송어회와 장어구이로 입맛을 돋구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송어회 맛은 역시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구천동리조트로 돌아와 방문을 열던 우리 내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문을 들어서니 촛불로 길을 밝혀놓고 벽에는 생신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장식들을 화려하게 설치하여 놓은 것이다.

할머니는 족두리 대신 금관을 할아버지는 파티용 선글라스에 만수무강하라는 어깨띠를 매고 나란히 손잡고 행진하도록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입장하자 온 가족이 모여앉아 손주들이 축시를 낭송해주고 큰아들과 손녀의 통기타 연주에 이어 덕담을 주고받으며 케이크를 잘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 이벤트에 감동하여 풋풋한 사랑으로 박장대소를 하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행복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한밤을 지새웠다.

이토록 화목하고 아기자기한 ‘가족애’ 속에 우리 부부의 황혼이 아름답게 노을지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 삼부자 나란히 사우나탕에 몸을 담갔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앞다투어 등을 밀어주니 흐뭇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자식이 있어 힘이 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낙엽을 즈려 밟아 보며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가을풍경을 만끽하고 맑은 공기도 실컷 마셔보며 우리가족 모두가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귀가길을 서둘렀다.

이한욱 <前 정읍시애향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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